축구...좋아하세요?

도파민을 찾아 프로스포츠를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

축구, 2002년 월드컵을 실시간으로 겪은 세대라면 많은 수의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스포츠가 아닐까?

비주류만 찾아가던 내가 처음으로 주류 속에 속했던 몇 안 되는 강렬한 기억 중 하나이기도 하다.

사실 A매치 경기를 즐겨보셨던 아빠의 영향도 빠질 수 없지만, 제일 친했던 친구와 드디어 같은 감정을 공유할 수 있다는 기쁨도 매우 컸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이놈의 비주류병은 어떻게든 나를 제자리로 돌려놔야만 성이 찼던 모양인지, 2002년 월드컵이 끝나자 빠르게 흥미가 식어버리고 말았었다.

그리고 그 시절의 막내이던 박지성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입단이 나를 다시 한번 축구의 세계로 이끌었었는데, 이때의 추억은 지금의 나에게는 안 좋은 기억으로 남고 말았다.

맨유에서 무척 좋아하던 듀오 중 한 명이 가장 유명한 불륜남으로 밝혀지면서 사모았던 유니폼도 모두 쓰레기가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새벽 경기까지 열심히 챙겨보던 나의 팬심을 이런 식으로 돌려받을 줄은 상상도 못 했었기 때문에 쓰면서 기억을 떠올리는 지금도 이가 갈린다.

그래서일까, 아직도 나는 제일 좋아하는 선수를 꼽으라면 아무도 떠올리지 못한다.

불륜 스캔들의 여파로 한동안 축구는 거들떠보지도 않을 거라 장담했건만, 나는 또 빠르게 야구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사실 야구는 의도하고 빠진 건 아니었는데, 계기가 지금 생각해도 좀 우습고 이상하다.

대학친구의 집에 놀러 갔는데 마침 친구가 가을야구를 한참 보던 중이었고, 친구의 응원팀은 내 고향의 지역팀이었다.

내 고향의 지역팀은 아주 멋지게 상대팀을 이기고 코시에 진출했고, 그다음 해 나는 상대팀이었던 팀에게 빠져있었다.

팀 경기가 있는 스포츠 종목의 팬들이라면 모두가 이해하는 말이 있다.

'응원팀은 하늘이 정해준다.'

그랬다. 나는 쉬운 길을 놔두고 다시 한번 주류 속의 비주류의 길을 택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외축덕의 길보다는 야덕의 길이 훨씬 더 편하게 느껴졌는데, 그도 그럴 것이 맨유를 좋아하는 내가 홈경기를 보려면 큰돈을 지불하고 비행기를 예약해서 긴 비행 후 런던 공항에 도착하고 기차 편을 또 예약해서 맨체스터까지 힘들게 가면, 또 거기서 경기장을 가야 되는데 귀찮은 건 죽어도 싫은 나에게 그것은 낭만이라기보다는 고문이었다.

하지만 야구는? 국내니까 마음만 먹으면 당일치기로도 다녀올 수 있다!

심지어 경기도 죄다 시차로 인해 늦은 저녁시간, 심야시간, 또는 새벽시간이라 잠을 줄여가며 봐야만 했다면, 야구는 저녁 황금시간대에 보고 잠도 다른 사람들만큼 잘 수 있다! (다만 월요일 빼고 다 경기가 있다는 큰 단점이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유니폼도 사모으고, 응원 MD도 사모으고, 지방 원정경기, 홈경기, 개막전, 가을야구, 팬 모임..

정말 열정적으로 나의 영혼을 모두 불태웠지만 그 또한 3년 만에 식고 말았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었다. 선수의 사생활 문제, 사회적 이슈, 감독의 언어 장벽 이슈.. 사실 여기까지만 설명해도 내가 어떤 팀을 좋아했었는지 알만한 사람들은 알 것 같다.

이래도 좋아할 거냐라고 묻는듯한 시험의 연속에 지친 나는 결국 이제 프로스포츠 쪽에는 마음을 두지 말아야겠다 생각하며, 나의 덕질 생활을 정리했었다.

정말 모든 마음을 다 줘버려서 다시 무언가를 그만큼 좋아하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