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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레몬 Oct 08. 2024

응원팀은 하늘이 정해준다.

입덕은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남편은 자신의 응원팀을 나에게 영업하려고 정말 부단히도 애썼다.

사실 그것은 자신을 위한 노력이기도 했다.

스토브리그가 아니면 중계를 봐야 하기 때문에 약속을 잡지 않는 진성야덕으로 살아봤던 나도 그 마음이 충분히 이해됐다.

데이트 중에 축구를 본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하지만 같은 팀을 좋아하게 되면 그것만큼 쉬운 게 없어진다.

애초에 데이트로 축구 직관을 가면 그만이고, 직관을 못 간다 하더라도 중계를 같이 보는 데이트 또한 존재한다.

그래서 남편은 나에게 유니폼을 사주고, 응원용품을 사주고, 비싼 테이블석으로 데리고 가고, 정말 안쓰러울 만큼 열심히 노력했다.


나 또한 그 마음에 전력으로 응해주고 싶었다. 영업을 하는 덕후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기에.

사실 혼자 가면 그만이지만, 솔로일 때와는 달리 연인이 있는데 직관을 혼자 다니면 무슨 말을 들을지도 조금 의식이 되었다.

그래서 나도 좋아해 보려고 했는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 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물론 축구를 좋아했던 경험이 있으니까 경기 관람 자체는 어렵지 않았지만 이미 EPL로 한껏 높아져버린 기준에 2부 리그를 보고 있으니 답답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름의 재미가 있었지만, 이상하게 입덕만은 할 수가 없었다.


결혼 뒤에도 남편은 꾸준히 축구를 보고, 꼭 직관이 가고 싶을 때면 조심스럽게 내 동의를 구했다.

그럴 때면 나도 흔쾌히 승낙했고, 우리는 나름대로 자주 함께 축구를 직관했었다.

그것만으로 남편은 그럭저럭 만족하는 듯했지만, 나는 못내 아쉽기는 했다.

응원팀에 온전히 빠졌을 때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을 알기 때문에 그 애매함이 진심으로 아쉬웠다.

이전 응원팀들에게 받은 상처가 이렇게도 극복하기 힘든 일이었나 하는 반쯤 우스갯소리를 하며 나의 애매한 마음은 지속되었다.


애매한 상태로 지켜보는 동안 남편의 응원팀은 1부 리그로 승격을 하고, FA컵에서 우승을 하고(이때 방방 뛰던 남편의 점프력이 대단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ㅋ), 축구전용경기장을 개장하고 그해 첫 아챔 경기도 치르게 되었다.

이쯤 되니 남편은 조심스러운 영업을 그만두고 본색을 드러냈다.

바로 시즌권을 사도 되겠냐는 아주 과감한 영업이었다.

시즌권, 그것은 나에게는 약간 환상의 영역 같은 것이었다.

그도 그럴게 나는 내 지역의 팀을 응원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시즌권을 구입 한들 직관이 어려워 무용지물인 물건이었지만, 그럼에도 진정한 팬이라면 갖고 있을 법한 낭만 그 자체였다.

우리가 유자녀주의자였다면 당연히 망설였겠지만, 우리는? 딩크족이다.

딩크족의 장점은? 취미생활에 망설임 없이 돈을 쓸 수 있다.


나는 단 한 가지 조건만 걸고 시즌권 구매에 아주 흔쾌히 동의했다.

그 조건은 나의 미지근한 마음이 들키지 않고 볼 수 있게 응원석과 멀리 조용히 볼 수 있는 자리로 구매할 것.

마침 남편도 응원을 열렬히 하는 편이 아니고 팔짱만 끼고 묵묵히 보는 일명 '팔짱충'이었기 때문에 아주 기뻐 보였다.

나 또한 도파민이 없어 약간은 심심하던 일상에 드디어 입덕의 계기가 생긴 게 아닐까 하는 기대감으로 다시금 축구장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그 해 나는 이제 다시는 직관을 가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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