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적 강제 외출이 집순이에게 주는 영향
원정경기와 홈경기의 횟수는 얼추 비슷했겠지만, 그때의 나에게는 거의 매주처럼 느껴졌다.
안 그래도 귀찮은 걸 싫어하는 집순이인 내가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미적지근하게 생각하는 팀의 직관 경기 하나만을 위해 소중한 주말 하루를 써야 한다는 것, 그것은 고문처럼 느껴지고 그러다 보니 빈도도 더 자주 있는 것처럼 느껴졌던 모양이다.
그러다 보니 나가지 않아도 되는 원정경기가 있는 주면 행복해지고, 홈경기가 있는 주는 미리 불행해졌다.
가뜩이나 경기에 흥미도 점점 잃어가는데 마침 눈이 침침해지기 시작하던 때라 공이 어디로 가는지, 어떤 선수가 공을 갖고 있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남들보다 시력 하나만은 좋다는 자부심이 남아있던 때라 내 시력이 나빠져서 안 보이는 게 아니라, 가까이 있는걸 너무 오래 보다 보니 초점이 안 맞는 것뿐이라고만 생각해 어리석게도 안경을 맞추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나는 자연스럽게 이북리더기나 책을 가져가서 잔디의 상쾌한 냄새와 응원소리를 축구장 ASMR삼아 책을 읽었고, 남편도 그런 나를 말리지 않고 묵묵히 경기를 보곤 했었다.
초여름까지는 그럭저럭 잘 버텼는데, 한여름이 되니 진정한 고문의 시작이었다.
우리가 사는 지역은 안 그래도 지독한 더위로 유명한 지역인데, 아무리 저녁경기라 한들 도심 한가운데 있는 축구장과 빼곡한 인파가 모여있다 보니 극심한 습기와 더위의 콜라보를 피할 수 없었다.
손풍기와 얼음팩을 가져가도 더위는 가시질 않았고, 책에 집중할 수도 없어 흐린 눈으로 경기를 보는 둥 마는 둥 하며 겨우겨우 여름을 버텨냈다.
길고 긴 여름이 지나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 오자 나는 더더욱 직관이 있는 주말이 싫어졌다.
가을바람이 불면 집순이인 나 조차도 어디론가 여행을 가고 싶어 지는 마음이 불쑥 드는데, 여행 대신 가야 하는 곳은 정해져 있고, 그 자리는 봄 여름 지겹도록 갔던 그 자리다.
그쯤 되니 배우자의 덕질을 이해해 주자 하던 내 관대함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내가 이만큼 희생해 준다 감사히 생각하라는 짜증만이 남아있었다.
그렇게 남편이 축구를 보는 동안 나는 마음속으로 내년부터는 여기 오나 봐라 하는 이상한 오기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
(가성비 충이다 보니 시즌권을 사놓고 오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당연히 제외되었다 ㅋ)
그리고 다음 해 남편과 나는 시즌권은 사지 않고 중요한 경기가 있을 때만 표를 사서 보러 가기로 약속했지만, 직관을 가고 싶어도 갈 수 없게 되었다.
전 세계인을 강제로 집에 칩거하게 만든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유행했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