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과 키보드의 서포터가 사랑하는 존재들을 응원하는 방법
수원의 수많은 서포터들은, 그리고 그랑블루 (*수원 팬 전체를 일컫는다)는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수원을 응원하고 있다. 서포터석을 지키는 동료들 가운데에는 산소통과 호흡기를 가지고, 때로는 여기저기 깁스를 한 채 절뚝이는 몸이 편치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유니폼이 아닌 출근길의 와이셔츠나 무려 포켓에 행거치프까지 꽂은 결혼식장 사회석의 정장을 입고 나타나는 경우들도 있었다. 동료들은 선수단의 출근길과 퇴근길을 함께하며 버스 앞에서 기다려주기도 했고, 선수들이 좋아하는 인형이나 그들에게 힘을 불어넣어 줄 커피차를 선물로 보내며 지지를 전하기도 했다. 유튜버와 사진작가로 활동하는 사람들은 서포팅을 포기하고 카메라를 들어 서포터석과 벤치, 그리고 그라운드의 순간들을 기록하고 전했다.
나는 경기장의 서포터석에서 목이 터져라 응원가를 부르는 것 외에도 수원에 대한 애정을 글로 담아 응원하기 시작했다. 수원을 응원하면서 넓은 스펙트럼의 감정과 이곳에서 동료들과 함께이기에 생겨난 경험들이 수원을 응원한 날들만큼 차곡차곡 쌓여갔다. 절망과 아쉬움부터 벅찬 기쁨과 뜨거운 감동까지 아우르는 감정과 기억들을 그저 그 순간에만 머무르게 하고 그냥 흘려보내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웠다. 어떻게든 내가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남겨두고, 때로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 감정을 나누고 싶었다. 그렇게 쓰기 시작한 글의 독자는 당연히 이 일을 잊을지도 모르는 나 자신이었다. 그러나 그저 혼자만의 기록에 불과했던 글은 차츰 동료 서포터들의 공감과 응원을 통해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 손을 떠난 글은 때로는 작은 위안이 되고, 때로는 큰 응원이 되어 누군가에게 닿았다. 경기장에서 지독하고 뼈저리게 느꼈던 그 모든 감정이 글로 흘러나와 점점 잊혀 가던 낭만을 다시 피워냈다. 소박한 애정을 담은 글이 동료들에게, 그리고 팀에 작은 불빛으로 닿아 순간이라도 힘이 되기를 바라며 나는 계속해서 글을 썼다.
2023년 11월, 강등이 결정될 수도 있고 피할 수도 있던 마지막 경기를 이틀 앞두고 모두가 절박했던 시기였다. '멸망전'에 임하는 결의를 다지고자 “우리의 목소리로 승리를 가져옵시다”라는 제목의 글을 팬 커뮤니티에 썼다. 비록 회사 점심시간에 핸드폰의 작은 키보드로 메모장에 적기 시작한 글이지만, 너무나도 간절했기에 한 호흡에 써 내려갔다. 11월에 연승을 겪으며 생겨난 실낱같던 희망과 급속하게 몸집을 불렸던 절박함, 이 모든 것이 업수히 여김 받았던 서러움과 남은 한 경기에서 반드시 승리하기를 바랐던 소망이 뒤섞였다.
아무 기대 없이 커뮤니티에 올린 글이 뜻밖의 반응으로 돌아왔다. 몇 시간 후에 직관메이트가 내 글의 제목 색깔이 변해있다고 말해주었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어서 다시 들어가 본 커뮤니티에는 내 글이 공지글로 지정되어 게시판의 최상단에 고정되어 있었다. 내 글에는 수많은 서포터들이 공감과 응원의 댓글을 남겼고, 나와 같은 마음으로 함께 결의를 다지고 승리를 염원하였다. 처음으로 글을 매개채삼아 이어진 마음을 실감했다. 작고 조용한 내 글이 사람들의 불안을 다독이며 잠시나마 어둠을 밝혀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커뮤니티에서 가장 잔혹했던 강등 직후의 겨울을 나며 분노와 슬픔을 담아내었고, 그렇게 동료들과 서로 부둥켜안고 매서운 겨울바람을 버텨냈다.
온라인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글의 힘을 느꼈던 것은 조금 더 이후의 일이었다. 2024년, 서포터로서 두 통의 손편지를 썼다. 봄에 부쳐진 첫 번째 편지는 연패 속에서 최선을 다하며 후배들을 일으켜 세우던 캡틴 양형모 선수에게, 가을에 부쳐진 두 번째는 무승부와 패배의 힘든 시기에 팀을 이끌던 변성환 감독님에게 보냈다. 연예인을 좋아했던 적 조차 없었기에 편지지와 펜을 꺼내 들기까지 많이 망설였다. 하지만 부디 다음 경기 전에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용기를 냈다.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회사에 출근해서는 아무도 없는 오피스에서 편지지를 채워나갔다. 오랜만에 펜을 잡고 긴 글을 쓰는 것이기에 글씨가 예쁘게 써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핸드폰 메모장에 적어온 글과 정리해 온 마음을 한 글자씩 옮겨 담았다. 내가 좋아하는 존재에게 혹여나 두서없이 주절거리다가 그들의 마음에 상처를 낼까 봐 몇 번이고 고민한 단어들이었고, 편지지의 공간이 모자랄까 적당히 길이도 조절한 내용이었다. 덜 마른 잉크가 다른 글자에 번질까, 조심스럽게 손부채질을 해댄 편지지를 잘 접어 팀의 공식 사이트에서 확인한 클럽하우스의 주소를 적은 봉투에 넣었다. 정성스럽게 우체국에 달려가 익일특급 등기를 접수하던 그 순간까지도 그저 이 편지가 부디 그들에게 한 번이라도 더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만 두 사람 모두 진심으로 내 편지에 화답해 주었다. 부산역에서 우연히 마주친 양형모 선수는 그 편지는 락커 안에 두고 운동을 하러 갈 때마다 보고 있다며 내게 직접 고마움을 전해주었고, 변성환 감독님은 내 편지를 사진과 함께 인스타그램에 올리며 “잠시 머물다 가는 클럽 감독이 아닌 인생 전부를 다 걸고 싸우겠습니다”라고 답해주었다. 내가 쓴 편지가 그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었다는 사실은 상상 이상의 감동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한창 가을이 깊어가던 날, 뜻밖에도 유튜브 댓글을 통해서 다시 한번 굉장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무승부로 끝난 부천과의 마지막 로빈 경기는 우리에게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다 잡은 승리를 너무나도 어이없게 놓쳤기에 아쉬운 경기였고, 그러면서 모두가 바라는 승격에 대한 희망이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경기가 끝나고 원정석에 인사하러 오는 선수들에게 박수만 쳐줄 정도로 나 또한 실망과 씁쓸함이 컸다. 하지만 경기의 비하인드를 담은 영상 속에서 양형모 선수가 '들리는 말에 흔들리지 말라'면서 후배들을 독려하는 모습이 신경이 쓰였다. 주장의 얼굴에 담긴 씁쓸함이 잊히지 않아,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와 힘이 되기를 바라며 유튜브 영상의 댓글에 작은 응원의 댓글을 달았다. 아무리 선수들이 흔들리지 않기 위해 인터넷을 찾아보지는 않는다고 해도 구단 공식 유튜브는 볼 것 같았다. 그래서 그동안 온라인에 가득했던, 그들이 걱정될 만큼의 비난 틈에서라도 그들을 향한 응원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댓글을 하나 남겨두었다.
사실 이 댓글이 조용히 파묻힐 것이라 생각했다. 아니면 누군가의 조롱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누군가는 답글로 내 글을 비꼬기도 했다. 그러나 이 댓글은 가장 많은 좋아요를 받으며 댓글들의 상단에 자리 잡았고, 누군가 이 댓글을 팬 커뮤니티에 캡처해서 공유해 준 덕분에 그 이상의 서포터들의 공감을 받았다. 그리고 그 영상에 달린 댓글들의 대부분은 아직 포기하지 말자며 서로와 선수들을 위로하는 내용들이 되었다. 고작 댓글 하나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 다른 서포터들에게도 공감을 얻는 과정을 지켜보며 글의 힘을 다시금 실감했다. 또다시 내가 남긴 작은 글이 빛으로서 누군가에게 닿아 위로가 되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전해지면서 커다란 응원의 불빛이 되어가는 순간이었다. 응원보다는 비난이 더 쉽게 오가는 세상에서, 작은 빛들이 모이면 어둠 속일지라도 멀리서도 보이는 커다란 빛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깨닫게 된 경험이었다.
나는 경기를 분석하고 평가하는 축구 전문가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유명한 작가도, 팀과 계약이 되어있는 관계자도, 공신력이 있는 기자도 아니다. 전문적인 축구 용어를 쓰거나 세련된 표현으로 글을 꾸며낼 줄 모르는 한 명의 서포터일 뿐이다. 그러나 진심을 눌러 담았던 내 글은 누군가에게 위로를 전하고 용기를 주며 함께 울고 웃을 수 있게 해주었다. 내뱉기 쉬워 금세 쌓여버린 실망과 좌절, 분노와 비난을 하나라도 덜어내고 희망과 기대, 위로와 기쁨을 나눌 수 있게 해주었다. 꽤 여러 곳에서 여러 방식으로 글을 쓰는 동안, 마음에서 나온 글이 머리와 손을 거쳐 다른 이들에게 전해지는 경험을 하며 문득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글을 쓰고 있을까, 무엇이 나를 이렇게까지 쓰게 만드는가. 그리고 내 글은 무슨 의미일까.
우연히 들은 노래가 그 질문에 대해 답을 주었다. 내 글은 어둠 속에서 빛을 내는 반딧불과도 같다고. 누군가가 시켜서 나를 살라먹으며 써내려가는 글이 아니기에, 내 글은 타인이 불을 붙여주어야 스스로를 태우면서 내는 촛불이 아니었다. 그 크기가 작을지라도 어둠 속에서 찾아내기에는 충분한 빛을 스스로 내는 반딧불이었다. 반딧불 같은 내 글은 좌절과 비난 속에서도 피어나는 소망과 위로를 담아내고자 부단한 날갯짓을 하고 있었다.
반딧불 하나로는 멀리 비출 수 없지만, 수많은 반딧불이 모이면 멀리서도 보일 수 있다. 우리 역시도 이렇게 마음을 모아 비추면 어둠 속에서 주저앉고 발버둥 치는 팀을 다시 밝은 곳으로 이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세상은 늘 결과를 내는 커다란 목소리를 요구하지만, 나는 그 틈 사이로 흩어지는 작은 응원의 소리들을 믿는다. 이 글이 언제 어디에서 누구에게 닿을지 모른다. 아니면 닿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그저 내가 아껴 마지않는 수원의 사람들과 글을 읽게 될 또 다른 이들에게 내가 날려 보내는 반딧불 하나가 닿기를 바랄 뿐이다.
해가 지고 사방이 어두워진 경기장에서 서포터들은 경기가 끝날 시간이 다가오자 하나둘씩 플래시를 켜서 흔들기 시작했다. 푸른 유니폼들의 바다 위에 내려앉은 빛의 물결은 응원의 파도가 되어 일렁였다. 수많은 반딧불들이 모여 만들어낸 거대한 빛의 장관이었다. 각자가 만들어낸 작은 불빛이 모여, 경기장을 환히 비추며 선수들을 감싸는 응원이 되었다. 홍원진 선수가 그날의 빛을 보고 큰 힘이 되었다고 말했던 것처럼, 우리의 반딧불 같은 응원은 결코 작지 않았고 선수들에게 끝까지 싸워 이길 수 있는 힘을 전해주었다.
앞으로도 나는 반딧불 같은 글을 통해 팀에 작은 빛을 보내고 싶다. 이 작고도 조용한 응원들이 모여 언젠가는 수원의 밤을 비추고 어둠 속에서도 길을 밝혀줄 큰 빛이 되기를 꿈꾼다. 우리들이 보내는 작은 빛들이 모여 수원의 밤을 밝혀주는 날을 그리며, 나는 다시 펜을 들고 또다시 반딧불 한 마리를 날려 보낸다. 이 반딧불이 네 개의 금빛 별이 빛을 잃고 은빛 별이 아직 빛나지 않는, 가장 어둡고 추운 이 때에 내가 사랑하는 팀에게 닿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