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간의 여유로움, 그리고 3일간의 고통 (1)
여행을 하다 보면 언제나 변수가 발생하는 법. 이번 여행은 변수가 가장 많았던 여행이기도 했다. 첫 6일은 좋았다. 금방 질리긴 했지만 그럼에도 새로웠던 풍경들은 자연의 위대함을 다시 느끼게 했고, 매번 다른 느낌의 케밥은 여행의 재미를 더해주었다. 이동 간에 읽었던 <오디세이아>는 독문학을 전공하고 있는 나에게 늦게나마 많은 깨달음을 얻게 해 주었으며,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다양한 동물들이(튀르키예에서의 고양이들은 특히 털이 깨끗하고 윤기가 있었다) 우리들을 반기는 모습을 보며 눈, 입, 그리고 머리까지 즐거운 여행을 하고 있었다.
계획대로 흘러가는 일들은 만족스러움을 가져다주는 대신에 평범하기 때문에 새로운 재미를 찾기가 어렵기 마련이다. 계획형 인간(혹은 J형 인간)은 계획대로 흘러간 일에 대해 성취감을 얻고 다음 계획을 짤 수 있는 동기를 얻으며 반대로 계획이 틀어졌을 경우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틀어진 계획 속에서 즐거움을 얻는 사람이다. 그전에 기존에 짜여있는 계획대로 움직인다는 사실부터 마음에 들지 않아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이번 튀르키예 패키지여행도 처음엔 거부감이 들었다. 그러나 이미 시작된 여행에서 계속 불평을 늘어놓을 순 없는 법. 결국 나는 직접 짜인 틀 안에서 벗어나 새로운 변수를 만들어 재미를 찾아보고자 하였다. 예상치 못한 변수들을 만나기 전까지 말이다.
해외여행을 떠나기 전 꼭 해야 하는 일이 있다. 바로 그 나라의 평균 기온을 알고 그에 맞는 옷들을 준비하는 일이다. 2022년 9월, 튀르키예 여행이 확정 나고 나는 가장 먼저 네이버에 ‘튀르키예 풍경’과 ‘튀르키예 2월 날씨’를 검색했다. 웬만해서는 네이버 블로그를 신뢰하지 않는 편이지만, 맛집 정보와 다르게 날씨 정보는 비교적 정확하다고 판단되어 블로그도 자주 찾아보았다. 다들 하는 말이 비슷하더라.
- 튀르키예의 2월은 가장 추운 달이지만 그럼에도 한국의 겨울보단 따듯하다 (최저기온도 영상이었으니 말이다)
- 바람이 꽤 부는 편이다
- 비가 조금씩 자주 내릴 수 있다
- 경량패딩을 입는 게 가장 적당하다
평상시에 추위를 잘 타지 않는 나는 사실 튀르키예의 2월을 만만하게 봤다. 스무 살에 제주도에서 살게 된 이후 처음 패딩을 구매할 정도로 추위에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블로그에서의 내용과 실제 이곳의 날씨는 완전 다른 세상이었다. 여행 내내 혹시 몰라 챙긴 패딩을 잘 챙겨 왔다는 생각뿐이었다.
2월 6일, 가장 기대했던 파묵칼레에 가는 날이었다. 한때 지리학과와 지리교육과를 희망했을 정도로 지리에 진심인 나는 이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평상시와 같이 8시쯤에 조식을 챙겨 먹고, 9시에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안탈리아Antalya에서 파묵칼레가 있는 데니즐리Denizli까지 가는 길은 유독 아름다웠다. 어쩌면 파묵칼레에 대한 기대감 때문일지도 모른다. 맑은 하늘을 뚫을 것 같은 높은 산맥 아래에는 단 한 채의 건물도 보이지 않았다. 눈이 즐거웠다. 이곳에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 역시 난 도시보단 시골이 더 좋은가보다, 라며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1시간쯤 지났을까, 창밖의 풍경은 서서히 눈 덮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느낌이 썩 좋지 않았다. 2022년 12월, 제주도에 거주 중이었던 나는 비슷한 일들을 몇 번 당한 적이 있었기에 해외에서까지 그 일들을 당하고 싶진 않았다.
#1. 폭설로 인해 도로가 통제되었던 탓에 제주시청에 갇혀있던 적이 있었다. 기말고사를 1주일 남은 시점이었기에 나는 알바를 마치고 시청에 내려와 카페에서 공부를 했다. 과 동기인 동완, 효린누나와 오후 11시까지 공부를 하고 비슷한 시간에 알바를 마친 미나누나를 만났는데, 폭설 탓인지 택시를 잡을 수 없었다.
결국 새벽 1시쯤 누나가 아르바이트하던 가게의 사장님께 양해를 구하고 그 가게에서 하룻밤을 묵은 적이 있다(덕분에 회를 마음껏 먹으며 공부할 수 있기도 했다).
다음날 아침, 누나의 교통카드를 빌려 먼저 기숙사에 들어갔다. 여전히 도로 상태는 심각했고, 516도로는 버스를 제외한 나머지 차량은 통제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2. 종강 후의 일이었다. 제주도에서의 짐을 다 싸고 본가로 올라가기만 하면 됐다. 그러나 기말고사 1주일 전도 그랬듯이 종강 이후에도 이곳 상황은 심각했다. 시청과 달리 학교 주변은 경사도 심하고 차도 덜 다녀서 눈은 쌓일 대로 쌓여있었고, 심지어는 도로도 얼어있어서 제대로 걷기 힘들었다.
본가 복귀 하루 전 날에 항공사에서 연락이 왔다. 결항이랜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으나 막상 이러한 일이 닥치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급하게 동기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딱 이틀만 재워달라고. 결국 과 선배가 자기 자취방에서 쉬다가 가라고 하셔서 혼자 자취방에서 누워만 있다가 25일 크리스마스 날에 본가에 갔다.
‘아 여행을 와서까지 이런 일을 당해야 한다니…‘. 제주에서의 악몽이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다. 안 좋은 예감은 빗나가지 않는 법이랬나, 역시나 빗나가지 않았다.
도로 통제.
순조로울 것만 같았던 튀르키예 여행 중 발생한 첫 변수였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나는 틀어진 계획 속에서, 혹은 변수 속에서 즐거움을 찾는 사람이 아닌가. 나는 시선을 가만히 멈춰있는 하얀 눈밭이 아닌 주변 사람들로 돌려보았다. 그러다 발견한 민정이와 승주 누나. 한 시간 동안 도로에 고립되었던 탓에 나는 두 사람들과 실컷 떠들 수 있었다.
대화를 나누면서 두 사람은 알고 보니 같은 대학교를 다니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참 신기하면서 부러웠다. 이런 게 인연일까, 먼 유럽 땅에서 만나는 같은 대학 동기라니. 놀랍게도 이들은 튀르키예 여행을 하고 7개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자주 만나고 노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역시 힘든 일이 닥쳐올 땐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 슬픔을 기쁨으로 바꿔야 적성이 풀리는 나인 듯하다.
Et hoc transibit!
이 또한 지나가기 마련이니까!
그렇게 우리는 도로통제 한 시간 후 근처 휴게소에 들어가 점심을 해결하고 약간의 시간 동안 더 대기를 하다가 무사히 파묵칼레에 도착할 수 있었다. 비록 날씨는 흐려서 완전히 마음에 들지는 못하였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