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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현 Nov 13. 2023

혼자서도 잘해요 | 타이완 (1)

어쩌다 대만행

D-28


    피할 수 없다. 더 이상 지체할 수도 없다.

    때는 군 입대 6주 전 오후였다. 튀르키예 여행을 마친 지 10일이 지난 시점이었고 여느 때와 같이 하루하루를 낭비하다시피 흘려보내고 있었다. 밤새 컴퓨터 게임을 하거나 유튜브를 보고 다음날 늦게까지 자는 삶, 한마디로 '폐인'이라는 단어가 딱 어울리는 나였다. 모든 것에 대해서 의욕이 없던 시기였다.

    군 입대 전에는 다들 후회 없이 놀고 가라던데, 이러다가는 입대하고 나서 지난 일에 대한 후회를 하고 있을 내 모습이 너무 선명하게 그려지는 게 아닌가! 지금 당장 뭐라도 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확 들었다.

    나의 일상생활을 가장 가까이에서 바라보고 있는 엄마도 나와 생각이 크게 다르진 않은 모양이었다. 엄마는 결국 나에게 큰 제안을 하나 하였다.


    "차라리 혼자서 해외여행을 한 번 다녀오는 건 어때?"


    이 제안은 너무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덕분에 내 삶은 크게 바뀌게 되었다.

 


 

    10시간 이상의 비행시간, 파묵칼레를 제외하고는 전혀 매력이 없어 보이는 풍경, 이슬람 문화권…… 비행기를 타는 그 순간까지 나는 이 질문을 끊임없이 던졌다. 군 입대 두 달 전인만큼 새로운 경험들을 하고 싶었고, 그 여행지로 나는 대만과 홍콩을 생각하고 있었다.

- 역대급 다채로움 | 튀르키예 (1) 中


    앞서 튀르키예 편에서 언급한 적이 있듯이, 나는 애초에 튀르키예 대신 홍콩이나 대만에 가고 싶어 했다. 그곳은 나의 언어적 장점을 앞세워 혼자서도 무난히 갈 수 있는 최고의 여행지였기 때문이다. 당시엔 가족여행이라는 이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튀르키예행을 선택했으나, 이번엔 나 혼자 떠나는 여행이었기에 내가 원하는 나라를 직접 고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기회를 놓칠 리 없는 나는 바로 2주 뒤에 떠나는 대만행 비행기표를 구매했다.


    여행은 6박 7일짜리 일정이고, 비행기표를 제외한 모든 금액은 내가 부담한다. 나는 이제부터 2주간 100만 원이라는 한정된 예산으로 1주일짜리 대만 일정을 짜야한다. 당시 대만은 코로나19와 관련하여 개인 화장실을 갖춘 숙소를 예매해야 했다. 게스트하우스를 이용하고 싶었던 내 생각도 틀어지고 1박에 3~5만 원이라는 큰돈을 쓰게 되면서 금전적으로도 나름대로의 차질이 생기긴 했지만, 다른 곳에서 아끼면 된다는 생각과 단순한 대만에 대한 설렘 하나만으로 이 모든 손해를 감당할 수 있었다.

    

    D-10, 대략적인 동선을 짜고 그 동선에 맞는 숙소들을 예약했다. 나는 여행하는 데에 있어서 계획을 짜는 것을 크게 선호하지는 않는 스타일이기에 세부적인 계획은 정해두지 않았다. 그저 풍등 날리기, 드라마 <상견니> 촬영지 가기, 프로농구 경기 관람 등 꼭 하고 싶었던 일 위주로 동선을 짰을 뿐이었다.

    여행 준비는 예상외로 순조로웠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숙소를 대만에 도착해서 즉흥적으로 구했으면 어땠을까’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1주일이라는 타이트한 일정 속에 어쩔 수 없는 최선의 판단이었다는 생각도 같이 든다.


    모든 준비는 끝이 났다. 떠나기 2주 전에 급하게 결정된 대만 여행, 중화권 드라마와 영화를 좋아하는 나이기에 어색하진 않았고 준비하는 데에도 크게 어려움이 없었다. 농구 티켓도 예매를 했고 <상견니>에 나온 식당들의 이름들도 다 찾아놨다. 이제 떠나기만 하면 된다.

    3월 4일, 윤서 누나와 재환이(터키즈 사람들 - 역대급 다채로움 | 튀르키예 (3) 中)와의 약속을 끝으로 나 홀로 세계여행이 시작되었다. 14살에 유학이라는 여행 이후로 두 번째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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