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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주 Nov 13. 2024

손 좀 줄래?



정원에게.


요즘은 어떤 글을 쓰느냐고 네가 물었을 때 나 얼굴이 빨개졌었어. 엄마에게 숨기고 있던 잘못을 들킨 것처럼 몹시 당황스러웠고 얼마간 자책했고 조금은 안도했지.


어리둥절한 시절을 보내고 있어.

겨우 4층까지 오르는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머리를 말리는 1분 동안에도 책을 읽던 생활이 멈춰버렸어. 20년을 그렇게 살아왔는데 말이야. 이제 나는 한 권은 커녕 한 문장을 읽는 것에도 마음이 수 갈래 갈라져 힘이 들어.

읽지 못해서인지 쓰는 것도 멀게만 느껴져. 이러면 안 되지 싶어 연필을 쥐고 앉아보지만 영 쓰고 싶은 마음이 들지를 않아. 쓰던 내가 어디로 간 건지, 뭐가 문제인 건지 눈만 껌뻑이고 있어.


정말 무엇이 문제인 걸까. 읽고 쓰던 나를 어디에서, 왜 놓친 걸까.

공부를 멈추면 증발해버리는 낯선 나라의 말처럼 이렇게 한 주 두 주 보내다 보면 읽지도 쓰지도 못하게 되어버리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해. 설마 싶으면서도 어쩌면 하면서.

당혹을 마주보고 앉아 있는 게 참 어색하다.


어느 번역가가 그러더라. 글쓰기는 말 걸기라고. 지금 나는 건네져오는 말들을 들을 수도, 누군가에게 나의 말을 건넬 수도 없는 상태인가봐. 건네지는 말들의 따듯함이 그리워.


그래서 너에게 편지를 써. 사라지고 있는 나를 붙잡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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