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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주 Apr 04. 2024

고맙습니다, 어서오세요

  "아침 미사 갈 거지?"

새벽 달리기를 마치고 와 개운하게 샤워를 한 뒤 이불을 감싸고 잠으로 빠져드는데  중학생 '달무리나'가 물었다. "부활절이잖아."


맙소사. 이 어린 친구야. 그러니까 안 되지! 사람이 얼마나 많겠니. 게다가 주교님이 오셔서 미사 집전하신다고 하지 않았나? 안 돼 안 돼. 그렇게 사람 많은 미사에 난 갈 수 없다고. 


3월의 끝, 봄을 품은 아침 해가 아직 몽울진 분홍 꽃잎 사이사이에 스밀 때, 결국 스멀스멀한 걸음으로 성당에 갔다. 아, 봄은 시작되었고 성당엔 사람이 가득하구나. 아이야, 벌써부터 심장이 조여오는구나. 광장공포증이란 바로 이런 곳에서 나에게 일이 날까 두려워하는 병이란다. 쓸데없는 두려움이 큰 공포를 불러오지. 공포는 홀로 오지 않는단다. 부디 이 좋은 날, 이곳에서 공황발작이 오지 않기를. 노력해볼게. 


가톨릭 신앙에서 부활은 성탄과 함께 가장 큰 명절이다. 예수님은 2천여년 쯤 전에 인간이 행한 죄의 대가로 자신의 목숨을 내놓았다. 못된 조롱과 온갖 고난 끝에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셨고, 사흗날 부활하셨다. 

기독교 교리의 '원죄'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은 죄 때문에 모든 인간이 날 때부터 가지고 있다는 죄 <표준국어대사전>)에 대해선 선뜻 동의하기 어렵지만, 인류를 위하여 사랑과 평화와 자비와 희생의 삶을 실천한 이의 죽음과 부활은 큰 마음으로 기릴만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득한 사람들 속에 있는 것은 아직(어쩌면 영원히겠지만) 온전치 못한 내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불안했고 무서웠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도록 자꾸만 눈을 감았다. 괜찮아, 괜찮아, 하며 조금씩 몸을 흔들었다. 


눈을 떴을 때, 의자 세 줄 쯤 앞에 앉아 계신 할아버지의 어깨가 눈에 들어왔다. 낡은 양복의 어깨선이었다. 아주 오래전 유행했을 회색 양복. 옷깃 위로 낡은 셔츠의 깃이 새하얬다. 셔츠 깃 위로는 옅은 갈색으로 빛바랜 것 같은, 주름지고 가는 목이 있었고 그 위로 백발의 머리가 단정히 빗겨있었다. 성가가 시작되자 낡은 돋보기를 콧등에 올리고 오래된 성가책을 들여다보며 따라 부르셨는데 흔들리는 고개의 움직임은 박자가 아닌 세월의 흐름이 만든 리듬이었다. 


할아버지의 오래되고 단정한 모든 것들이 감동스러웠다. 너무나 정성스러워서, 그것이 우리 인간을 대신해 죽음을 택하였고, 인간을 몹시도 사랑하여 부활한 이에 대한 할아버지의 최선을 다한 감사와 환영임을 너무도 잘 알겠어서 마음이 이상했다. 


정성을 생각한다. 

일에도 사람에게도 독서에도 언사에도 행함에도 상상에도 꿈꿈에도 정성스러운 사람이라면 그 인격 몹시 고매하지 않을까. 어쩌면 우리 회사 그 분 뒷담화도 정성들여 하다보면 내 마음가짐이 달라질지도 모르지. 


오늘은 이렇게 하얗고 회색이었던 할아버지에게서 울컥한 감동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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