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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미동 Aug 17. 2023

이제 그 모둠고기를 먹을 수 없네

익선동 이경문순대곱창 모듬순대고기

종로3가역과 안국역 사이에 익선동이라고 고깃집이 줄지어 있는 골목이 있다. 이 골목은 오래전부터 삼겹살, 갈매기살 같은 돼지고기 식당이 많아 근처의 직장인들이 하루를 마감하러 많이들 찾는 맛집골목이다. 근처 직장을 다니지는 않았지만 나 역시 오래전부터 친구들을 만나던 골목이었다.


헌데 최근 그 골목에서 이제는 맛볼 수가 없는 음식이 생겼다. 근데 그것이 식당이 없어졌거나 한 것이 아니라서 더욱 아쉽다. 


2021년의 이경문순대곱창


이경문순대곱창을 내가 알게 된 것은 이미 맛집으로 많이 알려진 이후였다. 소곱창전골이야 어지간하면 맛있는데 값이 좀 비싼 것이 흠이라, 돼지곱창으로도 전골이 있을 것인데... 하고 찾다가 가게 된 곳이 이 집이었다. 


그래, 우리 집도 아닌데 친한 후배들을 초청하여 그 맛을 보니... 아유, 잡내 하나 없고, 국물은 진득하니 깊은 맛이 나며, 양 또한 푸짐해서 2인분을 시키면 셋이서도 먹을 정도였다.


그다음엔 친구랑 같이 갔는데 아마도 계절은 여름이었던지 뜨거운 국물 대신에 모듬순대고기(메뉴명)라는 것을 시켰는데, 구성은 돼지 소장을 쓴 피순대에 말랑말랑한 젤라틴이 풍성한 머릿고기, 뽈살, 돈설 등이 나왔다.  근데 이것이 물기가 있어 촉촉한 것이 아니어서 탄력 가득한 맛을 주는데 친구는 이게 자기 입맛에 딱인지라 갈 적마다 이 모둠고기를 먹었다. 


모둠고기나 머릿고기라는 안주는 식당마다 그 모양이 조금씩 다른데, 어느 곳은 오소리감투나 간, 막창, 암뽕 같은 내장류나 귀때기 같은 것도 같이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곳은 피순대와 진정 머릿고기 부위만 나왔다. 

그리고 내오는 방법도 어느 곳은 금방 육수에 데치거나 쪄서 김이 모락모락 수분 가득 촉촉하게 뜨듯하게 나오거나, 아예 찜기에 나오는 경우도 있는데, 이곳은 건식이라 일단 눈에 보이는 수분은 없는데, 먹으면 말랑말랑-쫀득쫀득-쫄깃쫄깃이 처음부터 끝까지 느껴졌다.


2019년 초여름의 이경문순대곱창의 모듬순대고기(좌로부터 피순대, 머릿고기, 뽈살, 돈설)


나는 사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군내잡내만 없으면, 촉촉하면 촉촉한 맛에, 부드러우면 부드러운 맛에, 쫀득하면 쫀득한 맛에, 그 맛을 즐기는 편인데, 친구는 확실하게 호불호가 있는 편이라 이곳의 모둠고기를 좋아했다.  


나야 본래 머릿고기는 술 마실 때만 먹는지라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 메뉴인데다가, 원래 곱창전골 맛집으로 안 식당이라 전골을 먹었으면 했지만, 친구의 강력한 의지로 늘상 모둠고기가 단골 메뉴가 되었다. 그리고 이걸 시키면 국물이 따로 나오니 바로 1타 2 피인 것이다.


그러면서 나도 모둠고기에 맛을 들였고, 첨엔 뭣도 모르고 먹은 것이, 이것은 돈설이고, 저것은 뽈살이고 대충 구분도 할 줄 알게 되었다. 또 재밌는 게 친구는 모둠고기에 있는 피순대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거의 내 차지가 되었으니 내게도 좋은 메뉴임은 틀림이 없었다.


모둠고기는 우리에게만 인기 메뉴는 아니었다. 계절이 더워지는 늦봄부터 여름 한창의 시간을 지나 찬바람 부는 가을이 될 때까지는 뜨거운 전골 국물보다는 이 선하고 쫀득한 모둠고기가 단연 인기였다. 그래서 아마도 늦게 자리를 맡아 모둠고기를 주문하면, 서비스로 나오는 술국에 막걸리 한 통, 소주 한, 병을 다 마시고 나서야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대부분이 이 메뉴를 주문하니 말이다.


이렇게 친구나 내게는 좋은 안줏거리였는데, 언제인가 가서 겨우 한 자리 차지하고 앉아서 모둠고기를 주문했는데, 그날은 안 된단다. 다 떨어진 건가 해서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 곱창전골을 먹고 있었다. 나야 곱창전골도 좋아하니 그거 먹자고 했는데, 친구는 오랜만에 모둠고기를 먹으려고 기대감에 부풀어 왔는데 국물 먹을 생각을 하니 영 구미가 당기지 않았는지 그냥 나가자고 했다.

 

결국 익선동을 맴돌다가 어느 순댓국집엘 들어가서 모둠수육을 먹었는데 여기는 기술했듯이 금방 삶아내어 김이 모락모락 수분이 촉촉하게 나오는 집이었다. 친구는 아쉬운 대로  먹었으나 후에 얘기를 하였는데, 자기는 이경문순대곱창의 모둠고기처럼 수분 없이 건식으로 나오는 고기가 좋다고 고백했다.


그 이후로 얼마나 지났는지 친구는 이경문순대곱창의 모둠고기를 먹으러 가자했다. 그러면서 전화를 걸어 모둠고기가 되는지 물어보자 했다. 그래서 전화번호를 찾아 '오늘 가면 모둠고기를 먹을 수 있나요?' 물었더니, 사장님 몸이 편찮으셔서 근래에 모둠고기가 준비가 안 된다고 했다. 아아... 그런 사연이 있었구나... 아쉬움과 걱정과 미안함도 느껴졌다.


또 이후로 한참을 찾지 않았다. 못했는지 않았는지... 여하튼 친구도 그 이후로 이경문순대곱창을 가자는 얘긴 없었다. 나는 모둠고기가 없어도 곱창전골을 먹으러는 가고 싶었는데 이게 또 같이 갈 사람 찾기가 의외로 어렵더라. 돼지곱창전골을 먹는 사람이 생각보다 주위엔 없는지라...


그렇게 시간만 흘러갔다. 얼마 전 문득 궁금하기도 해서 검색을 해 최근에 다녀온 사람들의 사진을 보았다. 근데 메뉴판에 모둠고기가 사라졌다. 순간 뭔가 슬픈 생각이 들었다. 메뉴판에서 아예 사라졌다는 것은 무얼 의미하는 것일까? 제대로 얼굴이라도 알면서 지낸 식당은 아니었지만, 사장님의 캐릭터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던 터라 막연한 염려가 되었다. 그렇다고 전화를 걸어 사장님의 건강을 확인할 깜냥도 못되었고, 그렇게 또 시간이 흘렀다.


일단 메뉴에서 사라진 모둠고기기에 친구를 불러 가보기는 어려울 듯하다. 이 계절이 지나 조금이라도 선선한 바람이 저녁에 불 때쯤 돼지곱창전골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사람이랑 같이 한번 가봐야겠다.   




2019년의 초여름 이경문순대곱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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