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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미동 Aug 17. 2023

민물새우탕과 다섯 명의 엄마

천안 광덕 청하식당

얼마 전 동생들과 2박 3일 제천 여행을 다녀온 어머니는, 남매들 중 큰언니인 나이 들고 다리 아픈 자신을 보좌하며 수고스럽게 여행을 같이 해준 동생들에게 점심을 쏘았다.


어머니의 어린 시절 산골 냇물에도 있던 민물새우는 가재와 함께 맛볼 수 있었던 별미였다. 현재 사시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민물새우탕을 하는 식당이 있어, 남매들은 뭔 일이 생기거나 하면 그중 누구 하나가 이렇게 식사를 쏘고는 했다. 요즘처럼 포장이 발달한 시대니만큼 가끔은 포장해서 집에서 끓여 먹기도 하였다.



보글보글 얼큰하게 끓인 민물새우탕에는 수제비가 들어 있어 쫀득하고 탄력이 있는 맛을 보려면 바로 먹는 것이 좋다. 어린 시절 집에서 수제비나 칼국수를 많이 먹고 자란 나는 그것들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식당에서 파는 것들은 어린 시절 먹던 것들과는 다른 맛이 났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린 시절 집에서 먹는 수제비나 칼국수는 별 재료도 없이 감자와 호박을 넣고 끓여낸 데다, 먹다 보면 금방 불어서는 흐물흐물해져서 나중엔 거의 죽처럼 되었다. 하지만 식당에서 돈 주고 사 먹는 칼국수와 수제비는 왜 그리 맛있는가!


그야 예전에 집에서는 그저 한 끼니나 때우려고 먹는 것이고, 식당의 음식들이야 맛없으면 누가 돈을 내고 사 먹겠는가 말이다. 하지만 식당의 수제비도 오래 끓이면 불는 것은 마찬가지. 쫀득함이 남아 있을 때 서둘러 먹는 것이 좋겠다.


민물새우가 들어가면 국물은 시원하고 구수하고, 또 톡톡 터지는 민물새우의 식감과 거기서 흘러나오는 감칠맛 나는 국물이 맛있다. 처음엔 좀 밍밍 하지만 국물이 좀 줄어들도록 졸이면 간은 세지면서 국물의 진한맛이 올라온다. 


사람 당 하나씩 솥밥이 나왔다. 그게 그렇게 주문했으니 나왔겠지만, 밥은 역시 흰쌀밥이 맛있다. 밥을 덜어내고 솥에는 뜨신 물을 부어 누룽밥을 만들어 먹었다. 


얼마 전 치아를 새로 하신 이모는 굳이 누룽지를 드시겠다고 밥솥 바닥을 벅벅 긁었으나 너무 붙어버려 원하는 바를 못 이루셨다. 결국은 물을 부어 드셨는데, 언제고 집에 오시면 일부러 누룽지라도 만들어 드렸으면 싶다.


흰쌀밥에 말아 훌훌 먹다 보면 민물새우가 씹히지도 않은 채 목구멍에 걸릴 수도 있어 천천히 살살 씹어서 먹어야 했다. 그래서인지 쉽게 배가 불러왔다. 살이 찐 배는 보란 듯이 나와버렸다. 어쩌겠는가, 인격이라 여길밖에...


내 나이 50이 이미 한참 넘었으나, 조카는 이모들에게 여전히 자식인지라 많이 먹으라고 이것저것 덜어주셨다. 당신 입에 맞는 반찬이 있으면 맛있다고, 먹어보라고 앞에 놓아주시고... 내겐 엄마 아닌 엄마가 넷이나 더 있다.



국물 속에 들어앉아있는 백태는 왠지 특별한 맛이 들었다. 그래봐야 콩맛인데, 여기에 특별한 맛을 느낀다는 건 혀의 맛인지 머리의 맛인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맛이 좋았다. 오랜만에 어린아이처럼 이모들 틈에서 배 터지게 맛나게 밥을 먹었다.


내가 나이가 든다는 것은 이 남매들이 늙어간다는 것이다. 점점 이 남매들과 이렇게 맛난 것을 먹을 기회가 줄어들 것을 생각하니 서운하고 슬펐다. 앞으로 얼마나 시간이 남아있을지는 모르지만, 아주 가끔이라도 이모들 모시고 엄마집을 찾아야겠다 생각을 해보았다.


이번엔 술 한잔 못해서 아쉬우니 나중에 포장이라도 해서 집에서 끓여 먹어야겠다. 셋째 이모가 좋아하는 달달 막걸리도 한통 준비해 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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