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에는 누구나 새 스케줄러를 산다. 커피전문점에 앉아서 올해 내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던 신년 계획들을 내년 1월로 이월하는 작업을 하다 보면 깨닫게 된다. 아. 내가 또 이 짓을 하고 있구나. 그러다 주위를 둘러보면 자신처럼 정갈한 몸가짐으로 앉아 ‘내년이야말로’하는 결의에 찬 표정을 지으며 수첩을 정리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는 것 또한 깨닫고 덜 외로워질 것이다.
말하자면 월터도 행동보다 생각만 하는 ‘몽상가’였다.
그는 늘 상상 속에 빠져 있다가 상사의 말을 듣지 못해서 무시당하기 일쑤고, 짝사랑하는 여자 앞에서도 딴생각을 하느라 제대로 된 대화조차 나누지 못하는 사람이다.
월터는 라이프지에 다니며 사진을 현상하는 일로 매일 똑같은 하루를 반복한다. 상상 속에서 그는 재수 없는 상사를 쓰러트리는 싸움의 고수가 되거나, 그녀를 반하게 만드는 터프한 모험가도 될 수 있지만, 현실은 여전히 소극적이고 무기력한 사람일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디지털로 바뀌는 라이프지의 마지막 표지 사진 현상을 앞두고 유명한 사진작가가 찍은 필름이 없어지면서, 월터는 그의 평범하기 그지없는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을 위대한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
그는 자신과 동료의 사활이 걸린 표지 필름을 찾기로 결심하고, 마침내 상상 속에서 걸음을 박차고 나와 ‘현실’ 속으로 뛰어든다.
알래스카로, 북극해 한가운데에 떠 있는 배 위로, 얼음장같이 차가운 바닷속으로, 화산섬으로.
시작은 필름의 행방을 아는 그 사진작가를 찾기 위함이었지만, 어느새 이 여행은 늘 생각 속에만 머물러있던 월터의 ‘행동력’과 ‘의지’를 발견하는 모험으로 물들어간다.
언제나 깔끔하게 면도되어있던 얼굴은 수염으로 덥수룩해지고, 단조로운 길만을 오가던 월터의 발은 화산섬을 가로지르는 보드 위로 올라탄다.
그가 자신을 가둬두었던 생각 속에서 벗어나자마자, 현실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도전이 계속되는 현실 속으로 그를 안내한다.
월터가 실로 오랜만에 직접 몸을 부딪혀가며 겪은 인생이란 것은, 그의 멱살을 잡고 끌고 가는 것처럼 결코 상냥하지 않다.
그러나 결국 '삶의 정수'란 그가 따분해하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지점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고, 그 자체를 즐기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