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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간 월요 수필 - 위시리스트 : 도서 편

2022, 한 가지 종류의 책을 읽어야 한다면

by 활수

2021 연말맞이 위시리스트. 어려서부터 요리책 읽기를 좋아해서 엄마의 요리책은 거의 다 독파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시도하지는 않고 그냥 단지 음식 사진과 그 음식을 만드는 과정, 맛과 모습을 묘사한 글을 보기만 좋아하는 다소 이상한 습관을 지녔다. ㅎㅎ(이상하다기 보단 귀차니즘)



500가지 시리즈 중 하나로 출판된 맥주편인데 저자가 맥주의 풍미와 색깔을 묘사해놓은 톡톡 튀는 글솜씨가 일품이다.

특히 저 '얼을 빼려면 초콜릿으로 된 디저트와 같이 대접하라.'는 문장.


왠지 상상력이 지나치게 풍부한 나란 덕후는 이 문장 하나로 영화 <This means war>의 크리스 파인과 톰 하디가 이 책을 보고 저 문장에 꽂혀서 저 맥주를 구하러 벨기에까지 가는 거다. (영활 보신 분은 단박에 이해가능)

그런데 그마저도 둘이 치고받고 싸우다가 결국 구하지 못하고 미국으로 돌아왔지만, 자신들이 아닌 제3의 남자가 저 맥주와 초콜릿 디저트까지 준비해서 리즈와 사이좋게 디너를 즐기고 있는 모습을 CIA 사무실에서 같이 보게 되는 장면을 상상하게 되는 것이다. (아...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란 여자 정말 피곤한 감성을 지닌 여자..^^)


맥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없지만

칭따오 병맥주(개인 취향입니다)에 이마트 트레이더스에서 파는 미니 쥐포를 청양고추 팍팍 썰어놓은 마요네즈 간장에 찍어먹다 보면 세상이 좀 살만해진다.


이를테면 그 '살만한 세상'이라는 것은 단순한 기억이 아닌 추억이 더 많아지는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그 언젠가 인디음악 페스티벌에서 일회용 컵에 맥주를 따라 마시던 추억. 투명한 플라스틱 컵 안에서 출렁이는 황금물결만큼 함께 5월의 푸른 잔디밭 위에서 일렁이던 관객들.


엄마와 강원도로 무전여행을 갔을 때,

해변가 민박집 노천 식당에서

파도를 보며 매운탕을 안주삼아 마셨던 쏘맥.


애인과 썸을 탈 때 함께 갔던 역전 호프집에서 처음 마셔봤던 코젤 다크.

커다란 맥주잔 입구에 뿌려진 알 굵은 갈색 설탕과 계핏가루.

탄 달고나의 끝 맛 같은 흑맥주를 한 모금하고서

입술에 설탕가루가 묻어있을까 훌훌 털어내던 내숭 떠는 나까지.


이것들은 모두

기억을 넘어선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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