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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활수 Dec 03. 2021

금요 수필 - 12월의 러브레터

TO. 세상 모든 이모 고모 삼촌들에게.

솔직히 한 달 전부터 크리스마스라고 호들갑 떠는 거..


정말 촌스럽지 않아요?



예. 그때부터였을까요..

제가 호들갑 최고봉 촌년이 된 게..^^


어릴 적 믿던 산타는 제가 잠든 머리맡에
종합 선물 과자세트 (90년대 최고 인싸템. 이것을 안다면 당신은 밀레니얼 세대입니다.^^)를 두고 가던 중에

몰래 훔쳐보다가 바짓단을 붙잡은 저의 호기심 때문에

정체가 들통나서 부리나케 줄행랑을 쳤습니다.

흘러내린 빨간 바지 위로 보이는 BYC 남색 팬티..
그것은  아빠의 팬티였죠.

당시 조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던 저는
 할머니를 도와 빨래 개기며 바닥 쓸기 등의

집안일을 곤 했습니다.

그런데 지겹게도 갰던 아빠의 빤스를
산타할아버지가 입고 있다니요!

그 우연의 일치를 파악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후 다음 해 크리스마스까지도

모르는 척을 했던 것 같습니다.

왠지 그러고 싶었달까요.



장래희망 리스트에
세일러문 머큐리
피아니스트
화가
국어 선생님
사육사
가드


등을 가며
자신이 그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믿었던 소녀는
꿈과 희망을 무지개 너머 팔아버린
자본주의에 찌든 노비가 되고 말았지만..



여전히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캐럴을 찾아 듣습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선물을 받는 아이가 아닌

선물을 주는 어른이 되었다는 것.
받는 일보다 주는 일이 기쁜 것임을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제게는 조카가 두 명 있습니다.

 배로 낳지는 않았지만

간간히 지갑으로 키운 것은 분명합니다.


아니, 사실은 이 녀석들이

저희 집 실세라서

가족 내에서 가장 서열이 낮은 저는

그분들을 VIP라고 칭합니다.


평균 연령 5.5세.

하루 종일 집안에 있어도 10,000보 이상 뛰어다니는

건강한 분들인데요,


지난해 9박 10일의 꿀 같은 여름휴가 중

2박 3일은 이 분들에게 반납하고

밥도 먹이고

목욕도 시키고

머리도 말려주고

같이 잠들기도 했답니다.


저는 이 VIP 두 분 덕분에

매해 산타할아버지 노릇을 대신하며

잃어버린 동심을 찾기도 하고


아이를 키우는 데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에

공감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전국의 이모,

고모,

삼촌 여러분.

이 편지를 읽고 계신 분이 있다면

힘을 냅시다.


우리는 이 아이들에게

자랑스러운

마을 구성원 중 한 명이니까요.


그럼 올해도,

MERRY

CHRIST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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