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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활수 Apr 05. 2022

월요 수필- 사실 아빠를 사랑해본 적이 없어


나는 폭력적이고 무능력한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의처증에 20년 가까이 무직이었고 알코올 중독이던 아빠는 대낮에 큰길에서도

엄마를 때렸다.  폭력적인 백수남편이라니.

이 얼마나 설상가상인가.




우리 남매는 덕분에 남 눈치를 일찍 보게 됐다.

나는 10대의 대부분을

친구네 집 갔다 온다는 말을 못 해서 약속시간이 3시간이 넘도록 방 안에서 외출 준비를 다 마친 채 발만 동동 구르다가

결국 지쳐 잠드는 것에 썼다. (20대 때는 광견병에 걸린

개처럼 아빠와 싸웠다.)


10대 땐 아빠가 무서웠고

20대 땐 죽도록 아빠를 증오했으며

30대 땐 그마저도 못하게 됐다.


내가 스물아홉 되던 해 아빠가 루게릭이라는 희귀병에 걸려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2016년쯤 아빠가 돌아가시고

거의 6년 만에 엄마가 처음으로 기일에 산소를 가잔다.


엄마는 무슨 생각으로 한평생

몸과 마음에 주먹질을 한 남편의 기일을 챙기려는 걸까.


난 죽었다 깨어나도 모르겠다.

그와 그녀 사이

내가 알 수 없는 애정과 확신이 존재했대도

그건 내가 태어나기 훨씬 더 전의 일이고


연애 초반 무탈한 관계에서

보여주는 애정행각은

부침개처럼 언제 뒤집어질지 모르는 것 아닌가.







나는 아빠를 사랑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다만 그가 "아빠"노릇을 몇 번 한 적이 있었던, 그 가뭄에 콩 나듯 약소했던 에피소드가 잊히지 않고


전신이 마비되어 뇌사상태에 빠지기 직전에 찾아간 병원에서.

그게 마지막인 줄도 모르고 아빠의 얼굴을 보기 싫어서

휴대폰만 내려다보던 나를 말없이 바라보던 그의 허망한 얼굴을 생각하면


누가 가슴팍을 쥐어뜯는 것 같다.

그때 아빠는 할 말을 꾹 참는듯한 표정이었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으면

오히려 입을 다물게 되는, 그런 애매하고 일그러진 표정.


그는 왜 내 아빠가 된 걸까.

그는 왜 평생 그런 아빠였을까.


난 그에게 왜 그런 딸이 됐을까.

분명 어린 시절 앨범을 보면

내 사진 하나하나마다 "우리 딸 걸음마.", "예쁜 딸 건강하게!"라고 쓰인 그의 필체에서

사랑을 엿본 것 같기도 한데.

우리 부녀에게도 행복이 존재했었던 것 같은데.

왜 우린 이렇게 된 걸까.



매 해 기일이 돌아오는 4월, 혹은  길거리에서 아빠와 비슷한 남루한 행색의 아저씨들을 볼 때마다 아빠가 떠오른다.


엄마 앞에선 아빠 이야길 하는 것이

 지옥 같았던 수십 년을 끄집어내는 일이고

그녀가 입은 상처에 비하면 난 손톱 거스러미 수준이기에

되도록 참아왔다. 


그렇다면 매해 4월 곪아 터지듯

여전히 삐죽 솟아나는 이 감정은 그리움인가?


아니다.

성마르게 원망과 증오를 묻은 자리에 괴상하게 자라난

아무짝에 쓸모없는 싹수 노란 잡초일 뿐이다. 뿌리가 너무 깊숙해서 뽑을 수도 밟아 죽일 수도 없는. 지긋지긋하게 되살아나는 잡초.


여기서 뭔가가 자라난다면 어차피 사랑은 아닐 것이다.


나는 이 사실이 아직도 불편하다.


평생을 겪어도 적응이 안 될 것 같아.


아니. 세상사가 다 그렇지.

그냥 이것도 세상사라고 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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