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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활수 Feb 18. 2022

금요 수필 - 일렁이는 눈빛

다신 오지 않을 찬란한 10대를 코로나와 함께하는 아이들에 대하여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9년째, 사교육 업계에서 일하고 있다. 결승선이 사라져 버린 트랙을 달리는 마라톤처럼 기약 없는 취준생 생활 속에서, 버스비라도 벌어보고자 시작한 일은 어느새 업이 됐다.

처음에는 퇴근까지 몇 분이 남았는지 시계를 보기 바빴지만, 여러 해를 지난 지금은 시도 때도 없이 선생님을 찾는 아이들을 앞에 두고 휴대폰을 보는 것이 무례하고 무의미한 일임을 안다. 여덟 평 남짓한 교실 안에서 그들과 함께 하는 하루는, 누군가 쏜 화살 같다. 돌이킬 수도, 그렇다고 잠시 멈출 수도 없다.

그런데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행한 이후 하던 일을 멈추고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는 순간이 부쩍 늘었다. 마스크 때문이다. 입과 코를 가려 놓으니 아이가 무슨 말을 하든 무조건 눈을 보게 된다.

열한 살 박 군은 억울할 때면 눈가가 붉어진다. 마치 해돋이가 시작되는 지평선처럼, 눈시울이 벌게지면 무언가 박 군의 속을 서럽게 했다는 구조신호다. 서글픈 아이의 속을 헤아리는 일은 어렵고, 두렵다. 공을 들여 이야기를 들어줘야 하고 쉽게 건넨 섣부른 위로가 상처를 덧나게 할 수도 있다. 해답을 모르는 나로서는 그 사연 많은 눈빛에 공감해주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하지만 놀랍게도 아이들은 때때로 아주 단순한 이 방법만으로도 쉽게 진정된다.

여덟 살 김양이 즐겁거나 행복할 때는 눈동자에서 반짝반짝 윤이 난다. 오랜만에 근교로 떠난 가족 소풍에서

세 잎 클로버를 잔뜩 봤다는 말을 눈빛을 통해 듣고 있다 보면 '원래 세 잎 클로버가 지천에 널려있고, 네 잎 클로버는 찾기 힘들어.'처럼 산통 깨는 말은 할 수 없게 된다.

"선생님. 네 잎 클로버는 행운이고, 세 잎 클로버는 행복을 뜻한대요. 제가 행복을 엄청 많이 주웠어요. 선생님도 한 개 드릴까요?"

라고 물어보니 마스크 속으로 빙그레 미소를 지을 수밖에.

오늘도 나는 바이러스로 멈춘 세계 속에서, 멈추지 않고 살아 움직이는 눈빛을 본다. 검은색, 담갈색, 초콜릿색, 고동색, 비슷하지만 미묘하게 다른 총천연색의 눈동자들. 사랑과 우정, 질투와 욕심, 희망과 절망, 불안과 안식이 담겨 있었지만 그동안은 보지 못한 채로 지나쳤던 서로의 지나간 이야기들.

언젠가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면

이 계기를 빌미로 오랜만에 본 서로의 얼굴을 더욱 잘 살필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아마 깜빡 잊고 있던 열 다섯 소년의 거뭇거뭇하게 난 수염자국이나, 체리향 틴트를 바른 열넷 소녀의 빨간 입술을 보고 '녀석들, 그 사이 사춘기를 지나고 있었구나.'라고 한번 더 깨닫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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