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 그 찬란한 이름

어느 봄날에 맞이한 무기력과 친해지고 있었다.

by 윤채

한동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글을 쓰는 일도, 책장을 넘기는 일도.



좋아하던 것들이 전부 낯설어졌다.



손에 쥐고 있던 것들이 모래처럼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올봄은 이상하게도 양극단에 서 있었다.



결혼식이라는 환한 장면 한가운데 서 있던 날도 있고, 그와 동시에 설명하기조차 버거운 일들이 삶을 뒤흔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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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쁜 날은 분명 존재했는데 마음은 자꾸만 다른 쪽으로 기울었다.



사람은 가끔, 견딜 수 없는 슬픔 때문이 아니라 감당하기 어려운 '뒤섞임' 때문에 무너지곤 한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무기력이란 바다에 빠진 채 방황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이 상태에 완전히 잠식되고 싶진 않았다.



멈춰 있는 사람으로 남고 싶진 않았으니까.



그래서 아주 사소한 것부터 시작했다.



잠깐 집 밖을 나와 걷고 몇 페이지라도 책을 읽고, 맛있는 음식점을 찾아다니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냈다.



아주 거창하고 대단한 변화는 없었다. 그래도 오늘을 잘 버텼다, 오늘도 잘 살았다는 느낌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런 날들을 몇 번이고 지나고 나서야 문득 깨달았다. 나는 무기력을 밀어내고 있었던 게 아니라, 그 옆에 앉아 무기력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을.



[그림일기].png



어느 날, 고개를 들었을 때 거리엔 벚꽃이 피어 있었다. 언제 이렇게 핀 걸까 싶을 만큼 아무렇지 않게, 자연스럽게.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이상하게도 마음이 조금 풀렸다.



무기력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낯설지 않은 얼굴로 곁에 머물러 있다.



어쩌면 이 시간은 나를 망가뜨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잠시 멈춰 세우기 위해 찾아온 것인지도 모른다.



괜찮아지지 않아도 괜찮은 상태.



그게 어떤 것인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오늘도 나는 벚꽃이 핀 거리를 바라보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보통의 하루를 무사히 지나고 있다.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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