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일기
어느덧 4월이다.
일을 마치고 따듯한 물에 몸을 푹 담그고 나오니
노곤노곤해진 몸으로 침대에 엎드려 일기를 쓴다.
작년 12/29에 입사했으니 일을 시작한지도 3개월이 지나간다.
고체연료 앞에 오들오들 몸을 떨며
언 손을 녹이던 겨울을 지나,
이제는 점프수트 한 벌만 입고도
제법 훈훈한 날씨에 기분이 좋다.
출퇴근길 초록빛 순들과 부지런히 피어난 꽃들을 볼 때
시간이 너무나 빠르게 흐른다는 것을 실감한다.
3개월, 짧지만 이런저런 일들이 많았다.
그간 내가 배운 것들,
경험한 것들에 대해 적어보려 한다.
1. 공정 사장님들이랑 미팅할 때 주워들은 잡지식으로 아는 척하기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말들을 GPT에게 물어보고,
이것저것 메모해둔 꿀팁 노트가 빼곡해지고 있다.
사장님들이 작업하시는 동안,
방글방글 웃으면서 다가가
그건 왜 그렇게 하시는 건지
이 자재 이름이 뭔지 여쭤보면
다들 의외로 친절하게 알려 주신다.
얼마 전에는 목공 반장님이
일하던 나를 잠깐 부르시더니,
자재별 물량 산출하는 법과
일이 빨리 늘 수 있는 꿀팁을 전수해 주셨다.
덕분에 이제 쪼~금은 알아듣는 것 같다.
그래도 현장에서 들리는 말들은 늘 새롭다.
야리끼리, 데슬하가 뭔지 아는가? ㅋㅋ
2. 임팩, 드릴 등 쓸 줄 아는 공구가 생겼다.
아직 쓴다기보다는 버튼 누르기에 가깝지만!
하나 둘 경험이 늘어가고 있다.
나름 문도 달아보고, 드릴로 구멍도 뚫어보고,
천장 텍스도 덮어 봤다.
지난주엔 실장님 따라 조적도 쌓아 보고,
그제는 실리콘 쏘는 법도 배웠다. ㅋㅋㅋ
아직 흰색 실리콘은 엄두가 안 나는데,
반투명은 표가 많이 안나 부담이 덜해 마구마구 연습 중이다.
헤라보다 손가락이 표면 정리에 좋다는 꿀팁도 배워
온종일 손가락으로 실리콘을 쓸고 다녔다.
실장님께서 안 쓰시는 임팩을 하나 선물해주셨는데,
요걸로 열심히 연습해줄 예정!
3. 트럭 운전 30분 경력
내 인생에 트럭을 몰 일이 있다니!
타기 전부터 두근두근했다.
처음 타본 트럭은 생각보다 높고 무거웠다.
브레이크를 생각보다 일찍 밟아야 한다는 점이
다소 과격한 운전을 하는 내게
답답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트럭 운전에 생각보다 소질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동승하신 팀장님께서
속으로는 어떻게 생각하셨을진 모르겠으나...
그래도 잘한다 해주셨다
트럭을 몬다는 건 내 인생에 상상도 못한 일이었는데,
언젠가는 익숙해질 날이 오겠지?
얼른 익숙해져 도움이 되면 좋겠다 ㅎㅎ
4. 카고바지가 늘었다.
요즘은 현장팀의 기본 소양이 카고바지인 것 같아
하나둘 사모으고 있다 ㅋㅋ
비단 카고바지뿐만은 아니지만,
작업복들로 옷장이 채워지고 있다!
페미닌한 옷들을 즐겨 입었었지만,
이제는 쇼핑할 때도 워크웨어 위주로 보게 된다.
옷이 편할지, 펜이나 칼, 줄자 등을 넣고 다닐 수 있는
수납공간이 있는지를 따지게 되고
그리고 제일 중요한!
먼지가 묻어도 티 나지 않을 색과 소재로 고른다.
지난 주말에는 오랜만에 귀걸이도 하고,
예쁜 코트도 입었는데
거울에 비친 내가 살짝쿵 어색해서 웃음이 났다.
그래도 작업복을 입은 내 모습이 꽤 마음에 든다 :)
5. First In, Last Out.
이거야말로 현장팀의 기본인 것 같다.
현장에 제일 먼저 도착해 미리 그날의 공정을 생각하고,
작업자들이 일하기 편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
실장님께 처음 배운 한 가지는
현장 정리가 정말 중요하다는 거다.
깔끔하게 정리된 현장에 오면
작업자들이 현장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고,
동선도 정리되어 일의 효율도 는다.
사소한 일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열심히 작업하고 깔끔해진 현장을 볼 때 뿌듯함이 크다.
현장일을 시작하고는 매일 5시 반 기상에
야간작업 후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쓰러지듯 잠드는 게 일상이 되었지만,
하루하루 한마디씩 성장하고 있단 생각에
매일이 보람차다.
아직 막내지만,
내 현장이라는 마음으로 매사에 최선을 다하면
그 현장에서 스스로 애쓴 만큼 성장하는 것 같다.
지금 일을 대할 때의 나의 모토다.
First In, Last Out!
일단 Last Out은 아주아주 잘 지키고 있는 것 같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