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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일 Oct 17. 2023

서라운드 입체사운드

고개를 돌리고 다른 곳을 보고 있는데 어디에선가 움직임이 느껴진다면, 거기에는 도마뱀이 있다. 어디에나 있고 어디엔가 숨어있다.

상반기에 왔을 때는 날씨가 워낙 뜨거워 방에 가서도 들어가자마자 에어컨을 틀었고, 잘 때도 약하게 틀고 잤다.

깍깍거리는 소리가 에어컨에 이상이 있거나 팬이 돌아가면서 나는 소리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도마뱀이 내는 소리라는 걸 아는 데는 몇 달이 걸렸다.

다행인 건 이 친구들은 꽤 귀엽게 생겼고, 상당히 쫄보라 사람이 있는 한 바닥으로는 기어 내려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력을 거스르며 샤샤샥 움직이는 도마뱀들은 바닥 빼고 천장과 벽을 타며 여기저기에 숨어있다. 어떤 날은 내가 너무 빨리 방에 갔는지 당황하면서 잠깐 굳어있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어느 날 밤에는 스피커를 댄 듯이 울려 퍼지는 소리에 어디에서 나는 소리인가 의문이 들었는데 화장실 천장의 환풍구에서 들리는 듯했다. 쩌렁쩌렁하고 우렁차게 온 방을 뒤덮은 서라운드 입체사운드.

소리의 행방을 몰랐다면 매일 밤 소리의 근원지를 찾으며 힘들어했을 수도 있다. 도대체 어떻게 거기를 기어들어갔는지 조차 미지수인데, 들어가서 나오는 길이나 알고 그리 들어갔나 싶지만, 나의 단꿈을 자꾸만 방해하는 이들을 잡을 수도, 쫓을 수도 없다. 그나마 벌레들을 잡아주는 덕에 좀 낫긴 하지만, 워낙에 먹을 게 많아서 사냥에 열심히 노력하지 않아도 살만하니 숫자만 늘어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여러 가지 양가감정이 든다.

그래도, 귀여워서 참 다행이다. 처음 봤을 때, 그리고 여러 번 봐도 온몸에 털이 쭈뼛서는 동물이 자꾸만 나타나는 거였다면, 얼마나 방에 있기가 끔찍하고 쉬는 게 쉬는 게 아닌 게 되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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