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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일 Oct 16. 2023

안 되겠다면, 여행자처럼



좋은 마음을 가져보지만 쭈뼛거리는, 거리감에 결국 심정은 상한다. 애써 준비해보려 했던 것은 다 소용없어 보이고. 해본들 영문 없는 대답이나 들을 바에야 쏟아내고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만 맴돈다.

그래도 숙제가 없는 느낌. 퇴근 전부터 입 안을 맴도는 그 맛은, 고소한 맛과 알싸한 고수가 섞인 냄느엉, 만들어놓은 스프링롤, 예상보다 퇴근은 늦었고,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부랴부랴 걸아가 본다. 하지만 7시 가까운 시간, 가게 앞 매대는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고 철창문도 반쯤 닫혀 있었다. 아쉽게도 오후 늦게부터 먹고 싶었던 쫄깃하고 고소한 그 맛도, 미룰 수밖에 없어졌다.

어쩔 수 없이 디저트로 먹든, 저녁 대용으로 먹든, 과일주스가게 쪽으로 빠르게 걸어간다. 오늘따라 야외 테이블에 사람이 여럿 있다. 비어있나 싶었는데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나를 보고 싱긋 웃는다. 또 왔냐는 반가움, 아는 척하려 인사를 건네고, 먹고 싶은 두 가지를 손가락으로 짚는다. 매번 먹는 게 비슷해서 이번에는 얼음사진을 안 보여줬더니 뜨거운 채로 그냥 싸서 준다. 어쩔 수 없이 따뜻하게 먹어야지. 패션후르츠 주스까지 포장해서 두 손 무겁게 돌아가는 길, 마음이 헛헛하니 시장이 밀려왔다. 가는 길에 마땅한 식당은 문을 닫기 시작했고, 며칠 전 5천 킵을 거슬러 준 국숫집은 막 두 명의 손님이 가게를 나오는 참이었다. 혹시나 마지막 장사일까 봐 되냐고 물었더니, 메뉴를 모를까 봐 까오삐약 국수를 나에게 보여주신다. 고개를 끄덕이고 ‘무껍’이라고 하자, 뭘 좀 아는 놈이군? 하는 눈빛으로 더 묻지 않고 조리에 들어간다. 대충 아무 데나 앉자 연세 지긋한 흰머리 아저씨가 내 쪽으로 선풍기를 틀어주려고 줄을 여러 번 당겨보지만, 켜지지 않는다. 선풍기를 안 틀어도 선선하고 적당한 저녁공기였다.

내가 먹을 국수를 내어주고, 그들은 조금 떨어진 식탁에 본인들의 저녁찬을 차리고 있었다. 우선은 접시 위로 푸짐한 반찬 두 개가 올라갔고, 며칠 전 나에게 돈을 내어준 할머니가 몇 점 집어 맛보신다. 그리고서 선풍기 틀어주신 할아버지가 찐 밥이 가득 든, 짚으로 짠 밥통을 식탁 위에 얹는다. 국수를 가져다준 소년도 자리에 앉고, 국수를 만들어 준 아주머니와 중학생 정도 되는 딸도 자리에 앉는다.

도란도란, 국수를 먹는데 야채접시를 주지 않았다. 그걸 달라고 하다가, 왠지 찰밥도 먹고 싶어 져서 한 덩이만 달라고 했다. 염치없이.

너무 많이 떼어 주시기에, 조금만 조금만 이라고 하자 주먹 반 정도만 떼어갈 만큼을 양배추 접시 위에 올리고 내 자리로 돌아왔다. 쫄깃쫄깃한 식감에 즐거워하고 있을 때 할아버지가 뭐라 뭐라 하셨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왠지, ‘밥만 가져갔냐, 반찬도 주겠다’ 라는 느낌이었다.

어느새 한 명이 일어나 밥공기 같은 작은 그릇을 전달하자, 반찬을 한 주걱 퍼서 나에게 가져다주셨다. 위에는 고수 몇 가닥이 있었고 닭고기, 레몬글라스 등등 고기를 끓이고 볶은 요리 같았다. 알싸하고 짭조름하고 새큼한 첫 만, 감칠맛이 엄청났다. 버섯도 보이고, 내장도 보이고, 여러 가지 부위로 만든 음식 같았다. 밥 한입 먹고, 반찬 한입 먹고 국수 한 입 먹고 정신없이 먹었다.

선선한 저녁, 여섯 명 정도가 야외 식당에 도란도란 모여 식사를 하며 외지인을 챙겨주며 식사하는 풍경이 울컥했다. 물론 돈을 주고받는 거래로 이루어진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무 조건 없이 흔쾌히 내어주고 더 줄 것은 없나 두리번거리고 더 권한다.

쫌생이처럼 꽁해서 해주려고 하는 것도 해주지 않겠다고 결심에 다짐을 꼭 말로 전하고 말겠다는 못생긴 생각은 기분을 털어내려 온 식당에서 조금 가라앉았다.

문득 쓸쓸하고 의지할 곳이 없다 싶으면, 아예 외국에 홀로 온 여행객처럼, 여기에 섞인 듯 아닌 듯 처음부터 혼자임을 만끽하는 게 나에게는 더 이로울지도.


까오삐약과 한 덩이 받은 밥(까오냐오), 랍뺏(오리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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