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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nowBoy Oct 17. 2024

이상형

모순에 대한 고찰





최근 들어 술자리에 가면 이상형에 대한 질문을 많이 듣는다. 그러나 그런 질문이 내게 오면 난 순간적으로 얼어붙어 제대로 말하지 못한다. 이 또한 나의 모순적인 부분이 상당하기 때문도 있지만, 그보다도 내 이상형에 대한 기대는 없어진 지 오래되어서 그렇다.


또, 아직 자신에 대해 당당하지 못하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술자리에 갈 때마다 이 주제로 이야기를 못한다는 것이 계속 신경 쓰였다. 언젠가 누군가에게는 말해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 그래서 쓰기로 했다.


나는 이상형에 대해 오래전부터 생각이 많았다. 나는 어떤 유형의 여자를 좋아하는가, 그리고 어떤 연애를 하고 싶은가. 제대로 된 사랑 한 번을 못 느꼈지만, 그래도 여러 사람과 만나면서 천천히 '자신'에 대해 알아갔다. 사실 내 다소 독특한 사고방식(이는 내 무의식과도 연관되어 있다) 덕분에 갑작스레 깨달은 것도 상당하다.


이상형은 크게 외적인 부분과 내적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이 둘은 분명하게 개별적인 '나의 일부'로 작용한다.


외적 이상형은 바로 동그란 안경을 낀 여성이 귀여워 보인다는 거다. 이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이유를 알 수 없다. 사실 별 거 아닌 걸로 치부할 수 있는데, 그리고 실제로도 그렇기는 한데, 나는 이유를 모른다는 게 싫어서 오랫동안 생각해 봤다.


진짜 왜지?


객관적 시점으로 보자면 아무래도 내 유전자나 주변환경 등으로 인해 무의식적으로 발생된 부분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이상하다. 안경이라는 것은 캐릭터에 '지적여보이게 하는 것'을 어필하는 특성이 있다. 또 대부분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 등에서도 그런 용도로 캐릭터성을 만든다. 근데 나는 지적여보여서 좋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귀여움'의 요소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내가 이에 대해 깨달은 것은 대학교에 입학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나서다. 정확히는 아무 전조도 없는, 나의 독특한 '깨달음' 시스템에 의해 깨우쳐졌다. 버스를 타고 있었는데, 멜론 top100을 틀어두고 조용히 창문 밖 풍경을 응시하고 있었다. 당시 어떤 노래를 들었는지, 또 어디로 가고 있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그런 장면만 기억날 뿐.  그래서 더 의문이고, 여전히 풀리지 않는 '나'의 일부이다. 정말 알 수 없다.


내적 이상형은 당연하게도 내가 살아오는 동안 겪은 부분이 크게 작용한다.


나는 어릴 적부터 주변에서 '널 모르겠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내 또래부터 친척, 심지어 어머니조차도 자주 내게 '가끔 보면 내 아들이 맞나 싶어.'라고 농담 삼아 말씀하시곤 했다.


타인이 볼 때의 나는

술을 잘 마시면서 동시에 술을 못 마시고,

E면서 I이고, 인싸이면서 친구 없는 사람이며,

사랑꾼인 동시에 사랑을 모르는 사람이다.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정말 다양한 나의 성격에 대해 들었다. 하나는 확실히 말할 수 있는데, 나는 절대 나의 모습을 가식적으로 표출한 적은 없다. 즉, 거짓된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다. 누구에게든, 친하지 않으면 예의 있으면서 재치 있게, 친하면 친한 대로 장난을 치며 진심으로 다가갔다. 그런데도 완전히 상반되는 표현들이 나온다. 물론 익숙하지 않은 분위기의 사람들을 만나면 정보 수집부터 하려는 '나'가 있긴 하지만 그건 극히 일부고.


사실 감정 표현이 서투른 부분도 크고 작게 영향을 준 것 같다. 실제로 내가 슬픈 영화를 보고 울었는데(실제로 눈물도 흘렸는데) 같이 본 형이 '넌 안 슬펐어?'라는 말을 듣기도 했고, 걱정되어서 한 말에 영혼 없다는 말도 들어봤다.


그래서 나는 자연스레 '나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알아줄 수 있는 사람'을 꿈꾸게 되었다. 애초에 28년째 연락하는 부모조차도 결국 타인이라는 것을 초등학생 때 깨달았는데, 결국 완전히 서로를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도 그것을 바라게 된다. 나의 모순이자 일부. 지금의 나는 이를 받아들였다.





완전한 이해는 없어도,

옆에서 바라봐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그런 결론을 내렸다. 애초에 '이해받는다'는 선택지에서 굉장히 허들이 높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여전히 사랑 한 번 못하는 거겠지.


요즘은 나이를 먹어가며 허들이 조금씩 낮아지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놓아주고 있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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