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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행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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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nowBoy Oct 17. 2024

경주 여행3

여행 일기




이튿날, 아침 7시 호텔.



잠을 푹 잔 뒤 아침에 일어나니 친구가 바닥에 누워있었다. 왜 거기서 자는지 물어보니 내가 계속 때렸다고. 사과하니

괜찮다고 했다.


근데 왜 발이 아프지?


너 어제 침대 밑으로 굴러 떨어져서 아프다며 다시 올라갔는데, 기억 안 나?


나는 잠결에 일어난 일은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순수하게 기억 안 난다고 하니 친구는 어이없단 듯이 웃다 다시 잠을 청

했다. 잘 자라.


나는 일어나서 시식코너로 갔다. 쿠키에, 라면기기에, 커피랑 주스, 토스트까지. 진짜 시설이 좋긴 하다. 구석에 삼양라면이 보였다. '오랜만이니 먹어줘야지'하며 자동 조리기를 사용했고, 주스를 컵에 따랐다.


다 먹은 후 쓰레기를 처리할 때 구석탱이에 1분 수프라는 것이 있었다. 친구가 아침에 스프 있으면 먹는댔는데. 조리해서 가져가야겠다 생각했으나 음식 방에 반입 금지 문구를 보고 포기했다. 올라가서 깨어있으면 말이라도 해줘야지.


그리고 문제는 방문 앞에서 생겼다. 문을 열 카드가 안에 있어 못 들어가는 것이다! 1분간 온갖 생각을 하다 결국 미안함을 무릅쓰고 벨을 여럿 눌렀다. 친구가 일어나 열어줬고, 사과 한마디 한 뒤 수프가 있다고 말했다. 친구는 일어난 김에 먹어야겠다며 밖으로 나갔다.




12시, 호텔을 나온 후.



서로 '뭐 먹지?'만 주구장창 얘기하다가 프랑스 퓨전요릿집을 가기로 했다. 12분 거리를 걸어갔다. 정신이 멍했다. 어제 받은 소식 생각을 한 건 아니었는데. 친구랑 수다 아닌 수다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 반응이 참 느렸던 거 같다. 즐겁게 대화하고 있단 느낌이 안 들었다.


나는 나폴리탄, 친구는 오믈렛. 나폴리탄이 토마토 파스타 베이스에 소시지랑 치즈가루가 들어간 느낌이었다. 치즈는 싫어하는데, 먹었다.




점심을 먹은 후.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십원빵과 황남빵, 황남샌드 등 여러 빵을 먹기 위해 돌아다녔다. 십원빵은 치즈 들어간 것 하나뿐이라 패스, 황남빵은 세트로 팔아서 패스, 황남샌드도 최근에는 낱개로 안 판다고 해서 패스. 결국 빵 하나 먹지도 못 했다.


처진 기분으로 길거리를 구경했는데, 예쁜 가게들이 많았다. 천천히 둘러보다 문득 지브리 굿즈 안에 들어가 있었다. 그중 눈에 띈, 지브리 오르골 만이천 원. 종일 가격만 보다 나왔다.


이후 지인의 추천으로 어서어서 서점에 갔는데, 책들이 참 예뻤다. 배치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예쁜 서점이라 오길 잘했단 생각을 했다.


여러 책들을 보다 눈에 띈 건 황수영 작가와 리타 작가의 산문집들. 두 작가의 작품 다 사고 싶었지만, 결국 황수영 작가의 산문집 '여름 빛 아래'와 '아무 목이나 끌어안고 울고 싶을 때'를 골랐다. 합 2만 5천 원. 큰맘 먹고 샀다.


친구는 에세이, 수필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 차이가 뭔데?' 친구는 '글쎄?'라고 하다 '역시 철학책이지'하며 책 구경을 한다.




1시 10분, 책을 사고 기분 좋게 카페 도착.



나는 잭살차라는 처음 보는 메뉴, 친구는 과테말라 드립커피. 참새 혀를 닮았다고 작살, 경상도 방언으로 잭살. 재밌는 어감이라 마음에 들었다. 맛도 좋았고.


사진 몇 장 찍은 후, 내 사진도 찍었는데 볼따구를 잘라내고 싶었다. 30분 동안 멍 때렸다. 그냥,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안개가 끼인 것마냥. 친구는 조용히 폰을 하다 헤어질 때쯤 '심란할 텐데 고생했어. 즐거웠어.'라고 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2시, 신경주 역 도착.



2시 45분까지 타야 하는데, 화장실 가고 편의점에 가니 초딩 애들이 잔뜩 있었다. 음료 고르고, 30분 정도 기다리다 겨우 계산했다. 재잘재잘 시끄러운 게 참 귀엽더라.


KTX를 타고 자리에서 '여름 빛 아래'를 꺼내 읽으려고 했는데, 전혀 읽히질 않았다. 첫 문장부터 세네 번씩 읽다 몇 장 못 읽고 덮었다.



눈을 다 감지 못하는 조그만 이마에 첫눈이 그렁그렁 매달려 있다. 눈을 감으면 펑펑 쏟아질 것이다. 울 것 같지는 않다. 울고 싶지도 않다. 새벽에 깊숙하게 들어와 있을 뿐이다.

                                                                                                                - 여름 빛 아래 중에서 -



어머니로부터 온 그 소식 생각이 나다 머리가 뿌예졌다. 눈물이 나려 할 때, 옆자리로 한 여성이 와 앉는다. 눈물은, 멈췄다.


6시, 동네에 도착하자마자 코노를 찾았다. 역시 감정 소모에는 노래만 한 게 없다. 곧바로 9곡 3천 원 넣고 실컷 부른다. 너무 신나게 불러서인지 100점 2번, 2곡 추가. 아, 점수제거 할걸. 9곡이 딱 좋은데. 힘들지만 마저 부른 뒤, 어머니에게 다시 전화해 사정을 확인했다.


미안, 잘못 알았어.


다행이라면 다행이라 해야 하나...


어머니의 착오로 기분이 개운해진 나는 다시 담배를 내리 피우다 집에 들어갔다.


행복과 슬픔이 동시 존재한,

 이번 여행도 모순덩어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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