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맛보는 큐티의 힘
하루 하루 내 삶에 아무 조건없이 공급되어지는 산소처럼 아무런 값도 치르지 않고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보내던 어느날, 당연한듯 모임에 나갔다.
결코 내 삶이 평탄해서 감사하며 평안을 누리는 것이 아니다.
지긋지긋하게 따라다니는 알수없는 원인으로 인해 (가족 일부분의 고쳐지지 않는 악습관으로 인해 벌어지는) 반복적이게 벌어지는 사건 사고는 인간 안에 존재하는 악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이라.
다소 잠잠한 마음이었지만, 까페 안 냉기가 있다 할지라도 급 더워진 날씨 때문인지 가슴 속 뜨거운 불기같은 것이 모두 남아있었으리라 생각되어진다.
4명으로 이루어진 모임에서는 지난 주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서로 나누며 느낀점이나 묵상을 통해 일상 생활에서 받은 여러가지 것들을 이야기한다. 1시간 반이면 충분할 모임은 거의 2시간 반정도는 잡아야 이야기가 끝난다.
아무래도 여자들이 모이다보니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수다 아닌 수다가 이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날따라 A가 유난히 흥분된 상태로 도착하자마자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어렴풋이 들어보아도 상당히 좋지 못한 일로 짜증과 화가 잔뜩 나있었고, 무척이나 예민한 모습이었다,
남편과 해결되어지지 않은 너무나 큰 덩어리가 체기처럼 남아있기 때문이라 추측했다.
자주 고민을 나눴던지라 이야기를 들어주었지만 사실은 반은 건성으로 듣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사람들이 다 모여 앉아 성경책을 펼치기까지 걸린 시간은 대략 45분이었다.
은근히 답답함이 밀려왔다.
이날따라 지난 주 목사님의 설교 내용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지난 주 모임 후 읽어 오라던 에베소서 말씀 내용을 나눌 모양새였다. 조금은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A는 지난 주 참석을 하지 못해 아무런 전달을 받지 못한 상태였으나 상관없었다. 워낙 유명한 말씀이기에 몇번이고 통독을 한 덕에 에베소서 구절 중 특히 자신이 느낀 점을 첫번째로 나누기를 원했다.
A의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나도 다음 타자로 이야기를 나눌 생각으로 묵상 중 느낀 점을 머리속으로 정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용이 이상한 쪽으로 흘러 가는 것을 느꼈다.
처음 만났을 때의 그 분노와 짜증이 터져나와 남편의 험담 수준으로 변해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고 있었다.
어떻게든 중지시키고 싶은 충동이 들 정도로 나의 귀가 극도로 예민해졌다. 친하기에 매일 반복해서 듣는 똑같은 내용, 그안에 녹아있는 불평과 불만에 내 귀가 찢어지는 듯한 괴로움을 느꼈다.
'이건 아닌데....' 이 외침만 마음 속으로 반복했다.
울려퍼지는 죽음의 심포니는 그녀의 입을 통해 그칠 줄 몰랐다. 나 역시 답답함이 극도로 치닫게 되는 정점의 순간을 경험하며 도저히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리더가 지혜롭게 이야기의 흐름을 조절해 줄거라 믿었던 모양이다.
나도 모르게 한숨만 나왔고, 도대체 무슨 말을 들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극도의 분노로 휩싸이게 되었다.
시계를 보니 또 한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결국 두시간을 분노 덩어리만 만들다 끝난다 생각하니 더욱 화가나 참을 수가 없었다.
'왜 여기 와서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지...' 머리속을 맴도는 생각때문에 더더욱 이 자리를 떠나고 싶어졌다,
먼저 일어나며 대충 어색하게 핑계를 둘러댔다.
그러자 A가 되받아쳤다.
'무슨 일있어? 옆에서 한숨만 쉬고.'
가시처럼 들려왔다. 똑똑하고 눈치빠른 A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더 앉아있다가는 내 입을 단속못해 지랄 맞은 내 성격이 드러날 지도 모를 일이었다.
급하게 그 자리를 떠나 오면서 내내 불편하고 화를 감당치 못해 들끓는 마음이 괴로웠다.
그렇게 주말내내 3일을 끙끙 앓았다.
두번 다시 모임에 참석하지 않으리. 주문처럼 외우면서.
주일이 되었지만 여전히 내 안의 화는 가라앉지 않았다. 이해가 되질 않으니 인정할 수 없었고, 나의 이 감정이 맞다고 생각하니 더욱 용서가 되질 않았다.
개인적인 문제들은 사적인 자리에서 충분히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좋은 것을 나누기 위해 나온 자리를 통해 분노만 채우고 왔다는 사실이 화가 났다. 리더는 그 자리에서 흐름의 조절을 하지 못했고, 평안을 이루던 나의 삶은 균형을 잃은 채 허공을 떠돌고 있었다. 대체 어디서 부터 어디로 나와 어디로 흘러가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폭풍 속을 헤치고 걷는 듯한 기분이 괴로웠다.
정당화, 합리화를 시키면서도 왜 이렇게 내 마음이 불편한건지...내 말이 다 맞다면 나는 떳떳하고 편해야 정상이 아니던가. 나는 왜 이렇게 괴로운 것일까. 뭐가 잘못되어가는 지 알수가 없었다.
하나님, 마음의 평안을 허락하시고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알 길이 없으니 도와주세요.. 그리고 주님의 뜻을 보여주세요
침체된 기분을 안고 새가족 봉사를 하기 위해 좀 일찍 가서 준비하고 앉아있었다.
기분이 나쁜 탓인지, 몸 상태도 그리 좋지 못했다.
머리가 지끈거리면서 눈 앞이 핑 도는 게 아무래도 어제 약을 건너 띈 탓이 아닐까도 생각했다.
엎드려 있으려 했는데, 다른 분들 눈치가 보여 아무 생각없이 그동안 며칠 밀려있던 큐티 책을 꺼냈다.
저번 달에 이어 '민수기'를 다루고 있었다.
어찌보면 지루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들이라 와닿지 않았다. 내 마음이 지금 큐티, 그것도 민수기를 볼 상태는 아니였기에 그냥 습관적으로 읽어내려갔다.
6/24 '부정을 정결하게 하는 붉은 암송아지 잿물'
제목부터 와닿지 않았지만, 한번 두번 읽게 되었고 큐티설명을 읽어보니 뭔가 와닿는 것이 생겼다.
우리의 삶은 언제나 죄와 부정에 오염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을 통해 백성이 일상에서의 부정을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다른 사람의 죄 해결을 돕는 과정에서 더러움에 오염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죄나 부정함을 다루는 사람일수록 말씀과 기도로써 거룩함을 유지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나약한 인간이 죄를 다룰 때 함께 죄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게 해주셨다.
웬지 모르게 A가 떠올랐다.
그리고 사람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선함, 악함의 영향력에 대해 떠올렸다.
A의 믿음과 신앙생활에 대한 의구심도 들었다. 여전히 마음은 가라앉지 않은채 의문점과 불편함이 떠다녔다.
Note:
자신의 부정을 깨끗하게 하려 노력해야 한다. 그것들이 다른 사람까지도 오염시키기 때문이다. 죄를 자각하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것, 나를 더러워지게 하는 환경이나 요소들을 생각하고 돌이켜보자.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도 곧 선한 영향력이 아닌 악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음을 늘 깨달아야 한다. 설령 나의 잘못으로 그리 된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죄를 접했을 때 죄에 함께 빠질 위험성이 크므로 늘 영적으로 깨어 기도하기를 쉬지 말자.
월요일 아침이 왔어도 여전히 내 마음은 돛단배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무작정 바람에 밀려 떠내려가듯 잠잠하지 못했다.
조용히 커피나 마시며 잊고 싶었다. 준비하고 있는 것이 있어 몰두해야 할 일들이 많은데, 사실 까페에 가서 앉아 있는다고 손에 잡힐 것 같지도 않았다.
까페에 앉아 책이나 읽을까 하다가 먼저 큐티 책을 펼쳤다.
6/26 '불평과 혈기를 버려야 하나님의 영광을 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40년 광야를 떠돌아야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전히 불평 불만을 털어놓는다. 이에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에게 반석위에 지팡이를 쳐 물을 내어 백성들을 먹이라고 하신다. 모세와 아론은 백성들을 모아 놓고 그 앞에 지팡이를 두번 쳐서 물이 나오게 한다.
Note:
어려운 환경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것을 믿지 못하고 감사하던 마음이 떠나가 남편과 환경을 탓하며 불평과 불만을 털어놓는 A의 모습에 너무 화가났다. 그러나 이 역시도 잘못된 생각이기에 주님께 기도드렸다. 정죄하고 분노하는 마음을 내려놓게 해달라고... 오늘 말씀도 꼭 그 분께 들려주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것 역시 그런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내 뜻대로 판단하기 때문일까. 권면을 해줘야 하는 것이 맞는데 쉽지가 않다. 예전 더 힘들었던 상황에서 벗어나긴 했으나 반복되어지는 환경이 견디기 힘들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는 있으나 입으로만 하나님을 말할 뿐 하나님께 전적으로 시선을 맞추고 모든 것을 맡기지 못하는 모습이 안타깝고 화가 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러기 전에 또 내 속의 잘못이나 오류가 무엇인지도 되짚어야 함을 깨닫게 하신다. 대체 내가 무엇이기에 남을 정죄하고 그로인해 분노하냔 말이다. 그런데 참지 못하는 이 마음. 기도가 부족함을 보게 하신다. 그 분을 위해 기도해야겠다.
내용을 정리하고 노트한 후 다시 한번 더 큐티 내용을 묵상해보았다.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이 나와 닮아 있고 우리 모두와 닮아있다는 생각에 읽고 또 읽고 몇번이고 읽었다. 모세와 아론의 입장도 생각해보며..
그런데, 뭔가 빠뜨린것이 있는 것만 같았다. 불평과 혈기..
혈기....
20: 12)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이게 무슨 말이야. 왜 갑자기 모세와 아론을 혼내시지?
모세와 아론이라 하면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 자유를 주었던 자가 아니던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40년 이상을 광야 생활을 하며 변덕심한 백성들을 살려낸 자가 아니던가.
순간 눈이 번쩍 뜨여 다시 뒤로 돌아가 보았다.
10) 모세와 아론이 회중을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반역한 너희여 들어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11) 모세가 그의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 물이 많이 솟아 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감정과 혈기가 하나님 말씀보다 앞서는 것은 불신앙입니다. 백성의 거듭되는 반역으로 인해 모세와 아론은 자신들의 혈기를 제어하지 못합니다. 결국 모세는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씩이나 치며 마치 자신들이 물을 내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Note:
분노에 휩싸여 무엇이 먼저인지 판단하지 못했다. 꼭 정당한 일, 합당한 일을 하는 듯 보여졌지만 결국 혈기로 가나안 땅을 밟지 못한 모세와 아론의 모습과 다를 바 없음을 보았다.
불평도 불신앙이지만, 내 생각이 앞서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한 것도 불신앙임을. 믿을 수가 없다.
주님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꼭 모든 것을 내가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행동했다.
모임의 목적의 정당성만 외치며 다른이의 상처를 감싸주지 못한 죄, 오히려 상처 받고 실족하게 만든 죄, 하나님이 정해주신 공동체를 마음대로 깨려고 했던 죄, 다른 이의 믿음을 마음대로 판단했던 죄, 혈기를 누르지 않고 기도하지 않은 죄.
이 깨달음을 얻자마자 바로 A에게 연락을 했다.
불편한 감정을 풀고 나의 잘못을 고백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 생각했다.
내가 자리를 떠난 후부터 A가 지난 며칠동안 겪은 고통은 말도 못할 정도였다. 힘든 마음을 위로받고자 했던 A가 오히려 나로 인해 더욱 상처를 받았던 것이었다.
미안한 마음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깨닫게 해준 경로도 설명했다.
같은 말씀 같은 구절이라도 적재적소로 그때 상황에 맞추어 보여주심을 새삼 다시 깨닫는다. 생명력이 꿈틀대며 살아 움직이는 능력의 말씀이 살아가는 일상 생활에 얼마나 커다란 지혜와 은혜가 되는지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