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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쑝 Jan 14. 2020

Desire

소원을 발견하기까지는 평범한 인생이다

한 때는 다 끝이 난 것만 같았다.

좋은 시절, 홀홀이 한 몸 건사하면 되는 때와는 분명 달라진 내 모습에 억지라도 적응해 가려고 앞만 보며 다 놓쳐진 꿈럼 나 놓고 있었다.

첫 신앙의 고백 후 예수님'씨앗을 파는 작은 상점'의 이야기를 통해 먼저 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주셨고 주저 앉아있던 나를 일으켜 세우셨다. 그리고 다 놓았다고 여겼던 꿈 앞에 방망이질 하듯 웬지 모를 근거림을 갖게 하셨다. 그렇지만,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이야기내 처지 어쩔 도리 없는 상황 안에  지긋이 눌러 았다. 계산 확률에 의한 두려움만 앞설 뿐 어떠한 확신도 결단도, 구체적인 꿈에 대한 계획이나 그림도 없었다.

삶의 여정이 외롭다 여겨지가끔 설레던 꿈의 거울을 몰래 꺼내어 보고 부끄러워하며 혼자 미소짓는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정말 그게 전부였다. 그러나 말씀의 진리와 그 원리에 접근해 갈 때마다  진귀한 보물 발견하듯  하나씩 생겨나는 방법과 실행에 가까워져 가는 용기, 여러 만남과 계획들이 구체적인 모습으로 내 앞에 주어졌다. 너무나 놀라웠다.


'..그 안에 지혜,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 졌느니라..'


그러나 그것도 잠시, 가는 길이 참으로 척박하고 어두워 생각처럼 속도가 나지 않았다. 어느 때는 누구나 하는  보잘 것 없고 작은 일이라 불평도 했었고, 의심도 앞섰다. 주변의 연결 고리들이 주는 사건들이 터질 때마다 지치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화가 먼저 앞서 혈기를 내세우며 진짜 포기하고 싶을 때 '잠잠하라'하셨다. '고집 센 나를 -내려놓기'에 대한 순종의 훈련 즉 고난의 시기를 반복 거듭하며 여기까지 왔다. 지금도 진행 중이다. 혼자만의 싸움인 것 같아 이해할 수 없어 원망과 억울함을 늘어놓고, 엉엉 울고 불며 모든 걸 포기하고 싶다고 징징거린 횟수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때마다 어김없이 혼자가 아님을 알게 해주셨고, 하나님의 힘이 사방에서 나를 들어 올리고 있음을 알게 해주셨다. 또한 내가 서 있는 이 곳에서 시작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최선을 다해야 함과 이 곳이 바로 하나님이 선택하신 자리임도 깨우쳐 주셨다. 세상 어느 것 하나도 보잘 것 없지 않음 말이다.  큰 사랑과 깨달음에도 불구하고 시시 때마다 찾아오는 낙담거리들... 눈에 딱히 보여지는 결과없이 시간은 덧없이 흘러가는 것만 같았다. 늘 제자리 걸음을 하는 것만 같아 지치기도 하고 지겹기도 했다. 희망과 좌절을 오가며 감정에 따른 큰 폭의 동선을 따라 가기에만 급급했고 매번 감정 조절에 실패하며 낙담하는 것이 사실이었다. 

보여지는 논리에 급급해 당장 눈 앞 성공의 결과만을 바라며 큰 폭으로 치솟았다가 곤두박질 치는 어린 아이와 같은 감정 다루지 못하고 있었다.

뭣이 중한디


어려운 상황 가운데에서도 나름 많은 것들을 하며 열심히 달려왔으면서도 후한 점수 하나 주지 못하고 뭐가 뭔지, 어떤게 중요한 것인지 요점 파악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질책하며 어설프게 감정에만 매달리는 나라는 인간이 참으로 안쓰러웠다. 아이들을 가르치며 매 수업마다 요점 파악에 집중하는 듯 했는데, 정작 나에 대해 나는 뭘 했는지....

만약 내 소망의 성공적인 결과가 찾아오더라도 나를 위한 배려 하나 없고, 작은 어려움 하나로 감정 조절 못해 무너지는 나를 다스리지 못한다면 결과가 뭐가 중요한가 말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통해 사소해 보이는 빈 틈을 메워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시는 듯 했다. 더불어 감정선의 기폭을 점차적으로 줄이는 방법에 집중하시며 온갖 훈련하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이것이 비단 한 가지 목적, 소원 이루기에만 해당될까. 나는 사람의 마음을 만지는 자가 되고 싶기에 그 훈련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은 망가진 한 곳만 대충 수리하지 않으신다. 아예 밭을 갈아 뒤엎는 것처럼 우리의 모든 것을 뒤엎 하나씩 천천히 정돈하시고 수리하신다. 안되면 될 때까지 같은 곳을 여러 번 반복적으로 뒤엎으신다. 고통스럽지만, 그만큼 어느 부분에서 무너질 지, 어느 부분에서 가장 약한지가 보인다. 언뜻보면 비효율적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시간과 노력많이 드는 만큼 두 번 다시 망가질 일이 없게끔 아주 철저하게 새것으로 변화시키신다. 나 또한 그러한 훈련의 시간, 내 인생의 정비 시간과 과정을 거쳐가고 있는 중이다.

 누구나 늘 그렇듯 한 해를 마무리 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진다. 내가 새로운 해를 시작하며 가졌던 포부와 능력치를 성적표 받듯 두렵고 떨리는 기분으로 말이다. 이미 올 한해가 가기 전 가을부터 큰 사건으로 인해 흔들리고 있었다. 사시 나무 떨듯 다가올 불안과 두려움에 몸을 잔뜩 움츠리고 밥 한술 제대로 뜰 수도 없을 만큼 힘들어 얼굴 부터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러나 그 거대한 힘과 싸워 나가면서도 내가 서 있는 '이곳'은 포기하지 않으려 안간힘을 쏟았다. 낮에는 가면을 쓰고 일과에 대한 책임을 다하려 노력했고, 밤에는 언제 끝날 지 모르는 긴 터널 끝을 바라며 불면증에 시달리곤 했다. 이 또한 지나 가리라 라는 가사가 와닿아 찬양을 중얼거리면서 하루 또 하루를 꾸역 꾸역 억지로 견디고 있었 그 와중에 아무렇지도 않게 떠오르는 눈부신 아침의 태양마저 원망스웠다.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마 13:46)'


잊고 있던 진주가 있었다.

여전히 내 속에 아주 미세하게 나마 빛을 내고 있음을 발견하고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무엇이 더 필요한가. 나는 이미 값진 진주, 소원을 이미 발견했다. 그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신 것이 확실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해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빌 2:13)'

'네 마음의 소원대로 허락하시고, 네 모든 계획을 이루시느니라'

희망의 불씨라도 살아 있다면 어떠한 상황 속이라 하더라도, 오늘이라도 내일이라도 결코 늦은 것이 아니다. 이는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곧 수많은 가능성이 열려있고,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 지금 이 순간 가장 먼저 해야할 것이 무엇인지를 찬찬히 떠올려 보았다. 처해진 상황과 환경 탓만 하며 '안된다'가 아니라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일부터. 수면 아래로 조금씩 깊게 가라 앉고 있던 내가 조금씩 기운을 차리며 제자리로 돌아가려고 하고 있었다. 그 자체가 기적이었다.



한해의 마무리 소감이 비록 긍정적이지는 못했지만, 새 해가 시작한 지금 되돌아보니 하나님 도우심의 손길이 곳곳에 얼마나 컸던지....하나님의 능력과 그 손길이 아니었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이렇게 귀한 일을 하고 있지 못했을 것이라는 사실이 느껴졌다. 리고 그 동안 제자리 걸음한 게 아 발견하게 되었다.

순간 순간 작은 일 하나부터 귀하게 여기고 진정한 마음을 담아 최선을 다해 노력했기에 내가 소망했던 그리고, 절대 내 힘으로는 이룰 수 없었던 그 많던 기도 제목의 응답이 이루어 졌음을 보게 되었다. 내가 하찮고 보잘 것 없다 여겼던 것들 아주 조금씩 천천히 쌓여 1년 전, 2년 전, 5년 전과는 확연히 다른 위치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발견했다. 당장 내일의 커다란 변화와 기적만을 쫓던 나는 이제 10년 후 달라질 내 모습, 바라던 그 소원으로 인해 가슴이 뛴다. 

여전히 나는 어떠한 방법으로 어떻게 어디까지 이룰지 모른다. 그저 인도해주시는 길을 따라갈 뿐이다


우리의 꿈은, 희망의 시작은 멀리 있거나 혹은 아주 대단하고 커다란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속해 있는 이곳, 바로 내가 서 있는 이곳에서 출발하는 것이고, 어떠한 꿈, 어느 결승점에 도달하더라도 하나님은 끝까지 우리를 응원하시고 격려해주신다. 내가 원했던 결승점이 아니라 하더라도 언제나 선하고 좋은 것만 주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분명 내가 그 자리에 서 있을 것을 확신한다.


그래, 오늘 부터 나는 다시 시작한다. 보잘 것 없고 평범한 삶에서 꿈꾸는 삶으로, 꿈을 발견한 삶에서 한 발짝씩 용기내어 다가가는 삶, 더 나아가 그것을 이루는 것으로 나의 삶을 변화 시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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