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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공 Nov 17. 2023

치과에 천만 원 쓴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나예요

세상에는 가만히 놔둬도 충치 하나 없이 튼튼한 치아를 타고난 사람이 있는 반면, 이를 열심히 닦아도 충치들을 무럭무럭 생산해내는 충치메이커들이 있다. 타고난 충치메이커인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치과에 다니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레진, 아말감, 금니, 은니.... 화려한 색감의 충전재로 채워진 치아 개수가 차곡히 늘어갔다. 중학교 때 크라운으로 씌워놓은 치아 안쪽이 심하게 썩는 바람에 치아를 발치하고 몇 년 뒤 임플란트 수술을 하는 일도 있었다. 그럴수록 정기검진도 받고 스케일링도 주기적으로 해줘야 하는 건 알지만 치과에 트라우마 아닌 트라우마가 있는 나는 치과 가기를 미루었고, 큰 용기를 내어 몇 년 만에 방문하면 해야 할 치료가 또 한 바가지 쌓여있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한국인이 가장 무서워하는 병원 1위 치과(출처: 내 마음속) 공포심을 자극하는 마취 바늘이나 날카로운 기계 소음은 물론이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바로 비용이다. 얼마 전부터 욱신거리는 위쪽 어금니 때문에 몇 년 만에 치과에 갈 계획을 세웠다. 치과는 잘 알아보고 가야 된다기에 몇 군데에서 검진받기로 하고 날을 잡라 검진을 받았는데.... 


"자 손거울 잡으시고~ 여기 어금니 사이에 까만 부분 보이시죠? 이게 다 충치예요. 여기랑 여기는 인레이해야 되고, 여기는 잇몸 염증이 심해서 신경치료 들어가야 되고, 여기랑 여기랑 저기는 레진으로 때우고... 아 사랑니에도 충치가 있으니까 두 개 다 빼는 게 좋고...(후략)" 


의사 선생님의 말이 길어질수록 정신이 아득해져 가는 걸 느꼈다. 


"...... 오늘은 일단 스케일링만 할게요."


모닝 뽑으러 갔다가 벤츠 계약한 사람처럼 욱신거리는 어금니 하나 치료하러 갔다가 총합 250만 원가량의 진료계획서를 받은 채 터덜터덜 나왔다. 과잉진료일까 싶어 몇 군데 더 들렀는데 내 치아 상태가 좋지 않은 게 사실이었다(그게 더 슬펐다) 이번 치료까지 끝내고 나면 지금까지 치과에 쓴 돈만 대략 천 만원쯤은 될 것 같았다. (이 돈이면 중고 모닝 두 대는 뽑지 않을까)


그날 이후로 나의 관심은 온통 치아에 가 있었다. 근래 시청한 유튜브 영상 주제는 죄다 이렇다. 신경치료 과정, 신경치료 통증, 잇몸치료 종류, 올바를 양치질, 치실 추천.... 처음에는 비용이나 치료 과정을 생각하며 착잡했는데, 며칠간 고민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일종의 각성 상태가 된 것 같다. '그래. 이미 썩은 이는 돌이킬 수 없으니 업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치료받고 관리하자.' 검진받았던 치과 중 가장 신뢰가 갔던 곳에서 치료받기로 하고 이제 신경치료 2회 차와 레진 치료 2개, 사랑니 하나 발치까지 끝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이런 진단에 억울해할 정도로 내가 평소에 구강 관리를 잘해오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든 날 당장 벌어진 칫솔을 새 칫솔로 바꾸고 고불소 치약을 샀다. 하다 안 하다 했던 치실도 이제부터 매 식사 후 양치마다 하기로 마음먹고 몇 가지 철칙도 세웠다. 양치질에 신경을 쓴 지 이제 보름 정도 됐는데, 이전에 비해 훨씬 깨끗하게 닦이고 있다는 것이 체감된다. 양치질은 평균적으로 10분~15분 정도 걸리는 것 같다.


< 악습을 끊기 위한 구강 관리 철칙 >

1. 양치질은 10분 이상 시간을 들여 꼼꼼히(일반 칫솔+어금니 칫솔)

2. 치실은 꼭 사용하기

3. 초콜릿이나 쿠키 같은 단 음식 줄이기(최고 난이도)

4. 6개월에 한 번씩 정기검진 받기(치과 방문 미루지 않기) 


이미 주마등처럼 지나간 아픈 치아들은 마음속에 잘 묻어주고 앞으로 몇 십 년 동안 함께할 치아와 잇몸을 위해 이제라도 정말 열심히 관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지금껏 충치에는 백전백패 인간이었지만, 이번에야 말로 제대로 한판 붙어서 이기고 싶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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