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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연고 Jul 17. 2024

비슷하게 생겨서

중국 생활

수로 옆으로 놓인 오붓한 산책길을 벗어나 대로변으로 막 들어선 참이었다. 옆으로 놓인 상점들 앞에 남자들이 무리 지어 서 있었고, 그중 한 남자가 손에 들고 있는 광고용 명함을 건네며 말을 걸어왔다. 나는 어색한 미소와 함께 관심이 없다는 뜻을 전달한 후 아이들을 이끌고 가던 길을 재촉했다. 하지만 남자는 웬일인지 우리 뒤를 바짝 따라붙어서 걷기 시작했다.  


남자가 몇 마디 말을 더 건네왔지만 내가 대꾸를 하지 않은 게 오해를 부른 듯했다. 우리 뒤에서 못 들은 척하는 거야.. 못 알아듣는 거야.. 같은 말을 중얼거리는 남자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들은 이미 이상한 기운을 감지했는지 약간 긴장된 얼굴로 번갈아가며 남자를 뒤돌아 흘낏거렸지만 나는 남자를 돌아보지 않았다. 남자와 눈이 마주치면 내가 원하지 않는 불필요한 상황이 생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나는 외국인이 아닌 외국인이 된 셈이다. 외모가 비슷하니 말을 하지 않으면 외국인인지 모르고 나를 중국인으로 오해한다. 남자는 내가 자기를 무시한 것으로 오해하고 기분이 상한 듯했다. 온 신경을 뒤에 있는 남자에게 둔 채 긴장된 상태로 걷고 있는데, 우리 앞에 남자와 일행인 듯한 몇몇 무리들이 서 있는 게 보였다. 만약 그 무리들이 우리에게 시비를 걸거나 하면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가야 하나 고민이 됐다. 외국인인 것을 티 내면 오히려 엉뚱하게 또 다른 불편한 상황에 휘말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그냥 무시하고 지나치면 될 상황인지도 솔직히 잘 판단이 서지 않았다. 혼자라면 어떻게 강하게 나가보겠지만, 아이들이 옆에 있으니 돌방상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 그 짧은 거리를 걷는 마음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내가 특별한 관심을 더 주지 않자, 남자는 우리 뒤를 벗어나 자신의 무리에게 다가가 나에 대해 똑같은 말을 했다. 못 알아듣는 척하며 자신을 무시했다고. 나는 그저 아이들과 걸음을 재촉해 그 길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만약 그 남자가 뒤에서 시비를 걸어오면 가방을 내어주기라도 해야 하나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내 아이들과 가방 중 선택하라면 가방을 내어주는 게 나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프랑스의 한 지방 도시에서 중앙 광장에서 열리는 야간 조명쇼를 본 적이 있었다. 밤늦은 시간 조명쇼가 끝난 후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짙은 어둠이 깔린 늦은 시각이었지만, 조명쇼를 보고 나온 행인들로 보행로는 붐비고 있었고, 도로에 차량들도 제법 많은 상황이었다. 그렇게 나는 1차선을 달리고 있던 택시에 앉아 창 밖에 시선을 두고 있었는데, 멀리서 한 젊은 엄마가 혼자 유모차를 끌며 걸어가는 게 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한 남자가 뒤편에서 그녀에게 접근하더니 그녀의 어깨에서 가방을 휙 낚아채서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 남자는 빨리 뛰어 도망가지 않았기에, 뛰어서 쫓아가면 잡을 수도 있을 듯했다. 하지만, 그 엄마는 그 남자를 쫓아가지 않고 아기 유모차를 붙들고 있었다. 그 남자도 아기 엄마가 유모차를 갖고 있는 것을 약점으로 인지한 듯했다. 가방을 되찾겠다고 아기를 놓고 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짙은 어둠과 조명쇼의 흥분이 채 가라앉지 않고 마음이 들뜬 거리의 사람들, 소란한 차소리. 짧은 순간 가방 도둑은 코너를 돌아 골목길로 사라졌고, 그 어둠 속에서 아이 엄마는 외로이 유모차를 잡은 채 사라져 가는 가방 도둑의 뒷모습만 쳐다보고 있었다.


중국의 낯선 거리에서 아이들과 걷던 중 낯선 남자가 뒤를 노리는 상황에 놓이니, 프랑스에서 보았던 그 엄마와 가방 도둑, 유모차 생각이 났다. 대낮이고 차들과 사람들이 주변에 있지만 불안한 마음은 점점 커져갔다. 아이와 있으면 부모는 위기 상황에 대처하기 힘든 약점을 아는 사람이 위험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다.


앞으로는 그 남자를 만났던 대로변을 다시는 지나지 않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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