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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연고 Jul 18. 2024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중국 생활

이른 저녁을 먹으러 음식점이 즐비한 중심가를 걷고 있었다. 길거리 행사가 있었는지, 도로 곳곳에 간이 매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아이가 줄곧 탕후루를 먹고 싶다고 했기에, 이런 간이 매대라면 그런 길거리 간식을 찾아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이곳저곳을 기웃거려 보았다. 다행히도, 딱 한 군데 탕후루를 파는 곳이 눈에 띄었다.


매대에 가까이 다가가보니, 남은 제품이 거의 없는 상태였지만 다행히도 아이가 먹고 싶어 하던 딸기 탕후루가 두 개 남아있었다. 내가 딸기 탕후루를 가리키며 하나 달라고 말하자, 우리를 매대 뒤편에서 쳐다보고 있던 남자가 그 제품은 망가진 제품이라고 못 판다고 했다. 그러면서 20분 정도 뒤에 새로 제품이 준비되니, 그때 다시 오면 살 수 있다고 말해왔다. 겉보기에는 괜찮아 보이는 제품이어서 판매를 해도 될 듯한데, 좋은 제품이 아니라고 판매를 하지 않겠다는 남자가 정직해 보였다. 그래서 저녁 식사를 하고 조금 걸어서 다시 되돌아오는 게 수고스럽더라도 그 탕후루 매대에 다시 돌아가기로 했다.


좋지 않은 제품을 속여서 팔지 않은 그 남자의 정직함에 우리 가족은 모두 훈훈함을 느낀 참이었다. 그래서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그 매대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근처의 식당에서 저녁을 맛있게 먹고 배가 부르자, 나는 솔직히 아이가 그 탕후루 매대를 잊어버렸기를 은근히 바라는 마음이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는 아이다. 그 달콤함을 잊지 않고 배가 불러도 자신은 그 탕후루를 꼭 먹어야겠다고 했다. 더불어, 그 남자에게 우리가 다시 돌아오겠다고 했으니, 그 남자가 설령 물건을 안 갖고 있더라도 우리들은 그곳에 꼭 다시 돌아가야 된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 남자의 정직함에 대한 보상으로 우리는 더운 날씨에 땀을 흘리며 다시 그곳으로 걸어서 돌아갔다. 그 남자와 탕후루 매대는 그대로 있었고, 남자가 말했던 것처럼 매대에는 다시 여러 개의 탕후루가 채워져 있었다. 나는 잠시 딴 곳을 보러 갔고, 남편과 아이만 탕후루를 사 오기로 했다. 그런데, 그사이 일이 생겼다. 탕후루를 사 온 두 사람의 표정이 왠지 이상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머뭇거리며 뭔가 이상하다는 거였다. 그 남자가 탕후루 하나에 가격을 20위엔을 내라고 해서 두 개를 사고 40위엔을 지불했다는 거였다. 매대 앞으로 다시 가보니 딸기 옆에 8위엔이라고 적혀있었다.


씁쓸한 맛이 너무 쓰게 느껴졌지만, 우리는 그 남자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기로 했다. 파는 사람이 그 가격에 팔겠다고 하면, 우리는 그 가격을 지불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파는 사람 마음인 것이고, 처음부터 탕후루 가격이 하나에 얼마인지 정확히 묻지 않고 무조건 탕후루를 사겠다고 말한 우리의 실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못쓸 물건이라고 팔지 않던 남자와 무지한 외부 사람에게 맘대로 가격을 매겨서 판듯한 남자는 분명히 동일 인물이었지만, 우리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왠지 좀 힘들었다. 달콤한 탕후루를 산 후의 우리 표정은 모두 다 왠지 씁쓸해졌다. 마음이 왠지 좀 얼얼했다. 그도 그럴 것이, 좋은 사람이라 생각해서 우리는 그곳에 돌아가는 수고를 기꺼이 행했는데, 달콤한 탕후루를 산 후의 우리 마음은 오히려 씁쓸해졌다.


그렇게 씁쓸한 맛을 남긴 탕후루를 우리는 한동안 잊고 지냈다. 그러다 어느 날 들른 쇼핑센터에서 탕후루 가게를 마주했다. 저번 일 때문에 나는 왠지 탕후루가 그리 반갑지만은 않았지만, 아이의 손에 이끌려 다시 가게에 들렀다. 그런데 탕후루 가게 메뉴판을 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가게 메뉴판에 적힌 탕후루 하나 가격이 20위엔이었기 때문이다. 그 남자가 우리를 속인 게 아니었던 거다. 우리가 그 남자를 오해한 거였다.


탕후루를 사들고 가게를 나오는 마음이 급해졌다. 이 기쁜 소식을 나는 가족 모두에게 얼른 알리고 싶은 마음에 초조함마저 느끼고 있었다. 오해였던 것을 알게 된 우리 얼굴은 모두 한결같았다. 다행스러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묘하게 섞여있었다. 좋은 사람을 만났던 날의 기억을 그대로 간직하게 돼서 다행스러웠고, 좋은 사람을 나쁘게 오해했어서 미안했다.


그 탕후루 매대를 혹시라도 다시 마주치게 된다면, 행복한 마음으로 탕후루를 잔뜩 사 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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