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남편이 아는 오빠였던 시절보다 더 오래전부터 시부모님은 신발 도매업을 했다. 신발 가게 이름은 <제일 고무>였다. 우리가 결혼하기 전 새 식구를 들이기 위해 방이 세 칸짜리 주택이 함께 있는 더 큰 가게로 이사를 했다. 작은 마당이 있는 시댁에 가면 편하게 쉴 수 있는 우리 방이 있었다. 난 제일 고무 가게에서 신발 구경하는 걸 좋아했다. 언제나 샘플용 신발이 한 짝씩 나와 있었다. 신발 감상을 하고 있을 때 아버님은 어떤 신발이 마음에 드는지 나에게 물었다. 난 더 열심히 신발을 살폈다. 잠시 후 아버님은 마음속에 미리 점찍어 둔 신발이 있었던 것처럼 2~3종류 신발을 내 앞에 가져다주셨다. 그 당시 유행하면서도 나에게 어울릴만한 구두와 함께 무심하게 툭 건넨 한마디! "이거 신어봐라." 난 신이 나서 이것저것 신어보고 아버님의 의견을 물어보았다. 한 켤레 신어보고 "아버님, 이거 어때요?"한 켤레 신어보고 "이게 더 예뻐요?" 물었다. 편하게 신을 요량으로 조금 헐겁게 신으면, 크게 신으며 안 예쁘다며 정 사이즈를 추천하셨다. 지금 생각하니 '신발 고르기'는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놀이였다. 서로 대화하며 의견을 주고받는 사이 가게 안에는 웃음꽃이 피었다. 이렇게 '신발'은 어색할 수 있는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마음을 열어주는 제물이 되어주었다.
옥상
가게를 들어와 작은 마당을 지나면 오른편에 주택이, 직진하면 작은 창고 건물과 있었다. 작은 창고 위에는 또 다른 세상으로 텃밭과 과실나무로 초록으로 물들어 있었다. 가장자리에는 기다란 빨랫줄이 자리 잡고 있었다. 옥상에 가려면 비스듬하면서 작은 초록색 계단을 통과해야 했다. 나에게는 공포의 계단이었다. 발을 헛디딜까 봐, 떨어질 거 같아 나는 난간을 꼭 잡아야만 했다. 이 무서운 계단을 어머님, 아버님은 매일 여러 차례 다니셨다. 젖은 빨래를 널러 올라가고, 자연바람과 태양열에 바싹 마른빨래를 걷으러 올라갔다. 쌀뜨물, 채소 데친 물 등을 모아놓은 큰 통을 들고 올라가서 대추나무, 상추, 부추, 파 등 옥상텃밭에 거름물을 주고 내려왔다.
제일 슈즈와 옥상
재개발로 제일 고무 가게와 주택과 이별을 했다. 그리 멀지 않은 동네 3층짜리 상가건물로 이사했다. 1층에는 <제일 슈즈> 상호로 변경해 간판을 걸고 신발도매업을 하고, 2층은 전세를 내줬다. 3층은 살림집으로 사용하고, 4층에는 전보다 훨씬 넓은 옥상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공포의 계단은 없었다. 옥상 한편에는 장독과 작은 텃밭이 있고, 넓은 옥상 중앙에 아주 긴 빨랫줄이 2줄 있다. 이른 새벽 빨래를 해 아침 햇살을 받으며 살랑살랑 가을바람을 맞는 빨려들이 줄지어 널려있다. 아버님의 손길이 묻어있는 이 공간에서 잠시 아버님의 숨결을 느껴보았다. 모지스 할머니의 빨래 걷는 그림 속에서 모지스 할머니의 손길을 찾아본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따라 내 마음도 바람에 날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