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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니 Sep 14. 2023

[로마의 휴일]

영원한 공주님 오드리헵번의 영화

자주 가는 도서관 주차장에는 항상 빨간 베스파(이탈리아에서 만든 스쿠터)가 서있다. 빛깔도 영롱하고 늘씬한 자태가 매력적이라 볼 때마다 주인이 누구인지 궁금하다. 가능하면 허락을 받아 한번 타고 달려보고 싶다.


베스파 하면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바로 [로마의 휴일]이다. 공주라는 신분으로 새장에 갇혀 살던 앤 공주(오드리 헵번)가 세상이 보고 싶어 필사의 탈출을 한다. 그런데 그전에 먹었던 안정제 때문에 공원 벤치에서 잠이 들고 만다. 그 모습을 그녀를 인터뷰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던 신문기자 그레고리 펙이 발견한다. 그레고리 펙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그녀를 자신의 집에 데리고 간다. 그는 다음날 일어난 앤 공주를 짐짓 모른 체하며 자신이 기자임을 숨기고 밀착 취재를 하려다가 꿈같은 하루를 보내게 된다는 내용이다.


영화는 마치 친절한 관광 가이드라도 된 듯 로마의 명소를 곳곳이 들르며 로맨틱 영화의 진수를 보여준다. <진실의 입> 같은 경우는 원래도 유명한 관광명소였지만 영화에 나온 후에는 더욱 북적이는 곳이 되었다고 한다. <콜로세움>을 배경으로 베스파를 타고 달리는 유명한 장면은 말할 것도 없다. <스페인 광장> 계단에서 앤 공주가 아이스크림 먹는 장면 때문에 <스페인 광장>은 전 세계인에게 사진 찍기 좋은 장소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 영화에서 헵번은 그 유명한 헵번스타일을 선보임으로써 전 세계적으로 짧은 커트머리를 유행시켰다. 또 공주 역할을 맡아 전통적인 공주의 모습도, 일탈 중인 발랄한 공주의 모습도 마치 제 옷을 입은 것 마냥 찰떡같이 연기한다.


오드리 헵번은 태어난 지 3개월 만에 백일해로 죽을 고비를 넘겼다. 열 살 때는 부모가 이혼을 했다. 당시 아버지는 나치 추종자였으며 헵번은 그 후 네덜란드 외가에서 자랐다. 2차 대전 당시에는 독일군의 식량공급 차단으로 쓰레기통까지 뒤질 정도로 굶주렸던 경험이 있다. 발레리나를 꿈꿨으나 170cm나 되는 큰 키 때문에 꿈을 접어야 했다. 무대에 오르고 싶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그녀는 네덜란드에서 영국으로 건너갔다. 브로드웨이 연극 [지지]에 캐스팅이 되어 관계자들의 눈에 띈 그녀는 드디어 [로마의 휴일]에 출연하게 되었다. 여러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20편의 영화에 출연하는 등 화려한 스타 생활을 했다.


영화계 은퇴 후 그녀는 유니세프 친선대사가 되어 인생 제2 막을 시작했다. 헵번은 취임식에서 “유니세프가 나를 원했던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유니세프에 손을 내민 것입니다.” 하고 연설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네덜란드가 해방된 후 굶주리던 헵번은 연합군과 유니세프가 지원해 준 연유를 허겁지겁 먹었던 경험이 있었다. 그때의 고마움을 잊지 않았던 것일까? 헵번은 1년에 1달러라는 연봉을 받고 열정을 다해 유니세프 활동을 했다. 언론과 세상에서는 ‘과거 은막의 스타가 세상의 주목을 받고 싶어서 하는 행동’이라고 그녀를 폄하했으나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린이 한 명을 구하는 것은 축복입니다. 어린이 백만 명을 구하는 것은 신이 주신 기회입니다” 그녀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녀의 꾸준한 헌신에 세상의 눈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병에 걸린 아이들을 스스럼없이 보살피며 그 고통 앞에 눈물을 흘리는 그녀 앞에 구호물자와 기부금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1993년 사망할 때까지 그녀는 자선 사업가로서 아름다운 삶을 살았다. 장례식에서 동시대의 유명 여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 하늘이 가장 아름다운 새 천사를 갖게 되었습니다.”

2014년 5월 4일 구글은 오드리 헵번 탄생 85주년을 맞이해 기념일 로고를 만들었다


'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그대는 손이 두 개인 이유가 하나는 자신을 돕기 위해서, 다른 하나는 다른 이를 돕기 위해서임을 알게 되리라.’ – 그녀가 사랑했던 샘 레빈슨의 시 중 한 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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