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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림 Nov 22. 2023

내가 난독증이라고?

 

 

 지금도 가끔 어릴 때로 돌아가는 꿈을 꾼다. 식은땀을 흘리며 서럽게 울다가 깬다.

나는 춤도 잘 추고 다른 사람 흉내도 잘 내고 재미있는 그림도 잘 그렸다. 그래서 친구들 사이에선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공부는 못했다. 선생님과 부모님은 공부 안 하고 놀기만 한다고 매를 들고 벌을 세웠다. 나는 억울했다. 놀기만 좋아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도 다른 형제들처럼 부모에게 칭찬받고, 선생님께도 인정받고 싶었다. 하지만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힘들다고 말해도 생각이 딴 데 가 있어서 그런 거라며 야단만 더 맞을 뿐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다른 때보다도 시험을 못 봐 성적표를 부모에게 보일 수 없었다. 아빠 도장을 훔쳐다가 부모 확인란에 도장을 찍고는 학교에 제출했다. 며칠 후 아빠는 내 서랍에서 도장을 찾아냈다. 권위적인 아빠였기에 늘 무서웠는데 그날은 정말 더 끔찍했다. 대나무 총채가 부러질 정도로 종아리를 맞았다. 피가 뚝뚝 떨어졌다. 숨이 꼴딱꼴딱 넘어가면서도 울음을 참아야 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새로 부임한 남자 선생님이 담임을 맡았다. 한 친구가 00엄마에게 선생님이 돈 받는 걸 봤다고 반 아이들에게 말하였다. 소문은 쫙 퍼졌고 담임 귀에도 들어갔다. 선생님은 엄청 화를 내며 소문을 낸 아이들을 색출해 나갔다. 5명 정도 방과후 불러냈는데 그 가운데 나도 있었다. 공부 잘하는 아이는 없었다. 다짜고짜 칠판에 머리가 부딪칠 정도로 뺨을 때리기 시작했다. 나는 휘청거렸다. 영문도 모른 채 맞아야 했다. 무척이나 서러웠지만 엄마에게 말하지는 못했다. 엄마는 내 편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뛰어나게 공부 잘하는 오빠와 순종적인 동생 사이에서 나는 늘 비교를 당했고 형제들 앞에서 수치심과 모욕감을 느껴왔더랬다.     


거리를 걸으며 고개를 숙이니 사람들의 발이 보였다. 나를 뺀 사람들의 발걸음은 모두 경쾌해 보였다. 그때 결심했다.

‘나 하나만 없어지면 돼! 엄마 아빠도 공부 잘하는 자식들이랑 살면 더 좋을 거야.’

우리 집 옥상으로 올라가 난간에 매달렸다. 그런데 죽으려고 하니까 진짜로 죽을까 봐 무서웠다. 있는 힘껏 팔에 힘을 주고는 바둥대는 다리를 난간 위로 끌어올렸다. 몸은 상처투성이 되었지만 살아있음에 안도했다. 그렇게 어릴 때부터 ‘공부’는 내게는 위협적인 흉기와도 같았다.     

 

그랬었는데 4학년 때 인가, 과외선생님 댁에서 집단으로 수업을 받았는데 한 번은 선생님이 내준 문제를 다 풀어야 집에 갈 수 있다고 했다. 다른 아이들은 30분 만에 다 풀고 집에 갔다. 그런데 나는 2시간이 넘어서야 겨우 풀 수 있었다. 선생님은 그 자리에서 채점했다. 나만 백 점을 맞았다. 놀라웠다. 내가 공부를 제일 못했기 때문이다. 아니 성적이 제일 나빴기 때문이다. 시간이 조금만 더 주어진다면 난 잘할 수 있는 아이였다. 그때의 기쁨과 벅차오름은 사진을 찍듯이 선명하게 머릿속에 남아있다. 하지만 학창 시절 내내 시간은 나를 기다려 주지 않았다.     


내게 난독증이 있다는 사실은 어른이 된 이후에도 한참이나 지나서야 알 수 있었다. 내가 난독증이라고? 그런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자가 테스트도 해보고 여러 사례에 비추어도 보고 부모도 관찰하였다. 가족력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연구 결과에 집중적으로 탐구해 보았다. 떠올려 보니 친정엄마에게도 나타났다. 무엇이든 잘했던 엄마였지만 두세 페이지 이상 책장을 넘기지는 못했다. 그런데 한자(漢字)에는 능했다. 붓글씨로 써 내려간 병풍이 집안 가득하다. 그림처럼 뜻과 소리로 만들어진 한자는 수월했던 모양이다. 엄마의 유전자를 받았다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집중력이 없는 사람도 아니었고 성실하지 않거나 공부를 싫어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단지 글자의 음소 구분이 어려운 난독증이라는 학습장애를 타고났을 뿐이다.      


이제는 더 이상 ‘극복’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받아들임’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졌다. 계속해서 차오르는 알 수 없는 기쁨은 나를 향한 더없는 위로이고 깊은 애도이다. 오랫동안 엉클어지고 답답하고 암울했던 시절을 보상받고 싶어 글로, 그림으로, 악기로 토해내고 있다. 그리고 나는 계속해서 공부한다. ‘난독증’이란 놈은 좋은 놈일까? 나쁜 놈일까? 이상한 놈일까?    

 

전문가들에 의하면 성공한 기업가 중 약 1/3 정도가 난독증 증세가 있다고 한다. 골드만삭스 게리 콘 회장도 난독증이 가져다준 어릴 적 다양한 실패의 경험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숨구멍을 터주는 희망과 소망의 메시지다. 온몸으로 관통한 경험치로 인해 역경을 헤쳐 나가는 내성이 우리에게는 장착되어 있다. 하지만 특히나 우리나라에서 '난독'은 갈 길이 멀고 험하다. 학습부진아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도 심하거니와 글의 해독과 독해력에서 남들보다 한참 뒤지다 보니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도움과 배려가 절실히 필요하다.      


다시 어릴 때로 돌아가는 꿈을 꾼다면, 꿈에서라도 말해주고 싶다.

나는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이고, 집중을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필요한 것이며, 책을 안 읽는 게 아니라 글자라는 감옥에 잠시 갇혀있을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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