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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성 Oct 04. 2023

나는 어느 날 내가 시체라는 걸 알았다

  90년대 액션 영화를 보면 총에 맞고 구멍에 손을 가져다 댔다가 떼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그러면 피가 묻어 있고 그제야 자신이 총에 맞았다는 걸 실감한다는 듯이 놀란다. 구체관절인형을 지탱하던 힘이 갑자기 사라진 듯이 바닥에 쓰러진다.

  그런 상상도 한다. 그냥 총에 맞은 사실을 확인하지 않고 문을 나서면 어떨까? 살면서 마주하게 될 어떤 필연들을 그냥 ‘꾹’ 참고 그렇다 치고 이렇게 저렇게 해서 아주 긴 시간 너머까지 끌고 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 버렸고 많은 사람이 예감과 혼돈을 애써 무시해 왔다는 사실을 실감하면 무섭다. 어느 날 내가 사실은 총에 맞았고 이미 어떤 일이 일어났어야 했는데 그걸 무시하고 살아왔구나, 하는 생각. 뒤를 돌아보면 핏자국이 여기까지 길게 이어져 있다.

  편혜영 소설가의 『홀』에는 오기라는 남자가 나온다. 오기는 필연을 ‘오기’로 무시해 온 사람이다. 오기와 오기의 부인은 마침내 마당 있는 집에 이사 온다. 오늘은 밤새 집안의 모든 불을 켜 놓겠다고 생각한 오기는 새벽쯤 불이 전부 꺼져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얼마 뒤 사고를 당해 병원에서 깨어난 오기는 자신이 눈을 깜박이는 일밖에 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삶의 구멍들을 생각한다. 자신의 곁에 있는 장모를 만나 이상한 일들을 겪는다.

  이상한 일.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이상한 일이라고 하고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이상한 사람이라고 흔히 말한다. 이상한 일의 실체를 확인하거나 이상한 사람의 사연을 들어도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면 이상한 사건은 그냥 이상한 사건으로 남는다. 하지만 정신을 잠시 옮길 수만 있다면 정말 그럴 수 있다면 이해라는 것은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다. 그런 일은 평생 일어나지 않고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르고 그때 그건 뭐였는지 모른 채 지나버린다. 그래서 우리는 다정함을 발명했다.

  다정함은 생각한다는 거다. 혹시 너 그렇지 않니? 질문하는 것이다. 혹시나 하는 혹시의 세계로 들어가 먼저 살아보고 돌아오는 일이다. 유심히 살피는 일이다. 무덤 파는 사람에게 어떻게 나올 생각이죠? 물어보면 “아, 그걸 생각 못 했네요.” 대답이 돌아오고 손을 뻗어 내 쪽으로 끌어당기는 일이 있을 것이다. 혹시 너무 부끄러운 사람이라서 알아서 하겠다고 하면 알겠다고 말하고 나중에 근처를 지나는 일이 내가 생각하는 다정함 중 하나인 것 같다.

  몇 번쯤 애써 상처를 무시하고 슬픔을 보류하는 삶은 분명 익숙해진다. 하지만 구멍은 어쩌지? 소설 속 오기는 아내를 기억한다. 오해했던 장면들과 다정함이 있었다면 좋았을 그런 순간들을 기억한다. 아내는 먼저 물어봐 주길 바랐을 것이다. 오기의 아내가 마당에 화단을 가꾸는 장면이 그랬던 것 같다. 열심히 하는 것 같지만 사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모습이다. 오기는 그런 심정을 이해하게 된다.

  『홀』은 가족, 기억 그리고 구멍에 관한 이야기다. 관통상보다 위험한 것은 체내에 총알이 남는 것이다. 무덤은 닫지 않으면 그냥 구멍이다. 어느 날 꾹 참았는데, 울음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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