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있는 나무에 기대앉아 눈을 감았지. 바람과 햇살이 무성한 잔디 사이로 손바닥을 묻고 흔들었다. 드론으로 원거리 촬영한 내 표정은 어땠을까. 네가 여기 없다는 걸 알고 있었어. 그래도 돌아올 수 있는 곳이 생겨서 좋았지. 이게 다 게임이라면 이 부분을 따로 저장해둘래. 아무것도 덮어쓰지 않게 잘 간직할래.
다음엔 로봇 개를 갖고 싶어. 로봇 심장, 로봇 혀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모델로 할래. 로봇청소기처럼 말이야. 활동성은 한 40퍼센트로 설정해 두고 나는 전기세를 납부할게.
로봇 개가 발등 위에 앉으면 그건 그냥 명령어를 실행하는 것뿐일까. 로봇 개가 자기 발가락을 못 만지게 하면 그건 그냥 자기방어 프로그램 중 하나인 걸까. 로봇 개를 잃어버리고 게시판에 전단을 붙일 때 뭐라고 써야 할까? 진짜 개는 아니라고 써야 할까. 다음엔 로봇 개를 갖고 싶어. 나는 로봇 심장, 로봇 손으로 그 개를 천천히 쓰다듬을래.
갖는다는 건 좀 그렇지? 갖는 것도 아닌데 왜 비 오는 날 못 나가게 할까. 왜 바닥에 떨어진 치즈를 못 먹게 할까. 사랑해서, 더 똑똑해서 그런 일을 하는 걸까. 생명을 갖는다고 말하면 안 될 것 같아. 하지만 로봇 개는 로봇 상점에서 사야 해. 유기된 로봇 개를 데려오는 건 너무 가슴 아플 것 같아. 여기저기 전선이 삐져나온 살아있는 로봇 개를 보는 건 고통스러울 것 같아.
로봇 개는 세상에 나오면 안 될 것도 같아. 하늘을 나는 차, 공간이동 장치, 불법 광선총 파는 지하실 같은 걸로 가득 찬 진부한 미래를 상상했어. 어쩐지 나는 거기서 아직도 재미없는 사람일 것 같았지. 로봇을 따라잡으려고 로봇 팔을 달고 열심히 일하는 내가 있을 거야. 그때쯤엔 시에 로봇이 나오는 일도 아주 흔한 일이겠지. 어제 처음 입을 맞춘 사람에게 자기 입술이 사실은 로봇 입술이었다는 말도 듣게 될 거야. 그게 뭐라고, 내 심장엔 비상 자폭장치도 있어. 컴퓨터가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이 자식 이거 안 되겠다.” 싶으면 작동돼. 그래도 너를 사랑해, 아마 그렇게 말하겠지.
그 지경쯤 되면 로봇 개가 무슨 상관이 있겠어. 그때쯤엔 아마 소파에도 갖는다는 표현은 못 쓰겠지. 지금 많이 써둘게. 아니 그냥 안 쓸래.
알리야, 내가 너만 사랑할게, 하고 말했던 걸 너는 들었을까. 너를 품에 안고 멀지 않은 곳까지 뛰어가서 어떻게 좀 해주세요, 말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않았지. 아직 그런 미래는 오지 않았나 봐.
너를 로봇 개로 만들면 너는 나를 용서할까. 로봇 심장을 맞대고 나란히 아침에 깨어날 수 있을까. 지금은 그럴 수 없으니까. 다음엔 꼭 그러고 싶다.
사랑이란 건 땅에서 완전히 분해되는 거였으면 좋겠다.
모처럼 너를 보러 가서 이런 것들을 생각했어. 가상현실처럼 눈앞에 있는 것 같았지. 아무리 부품을 갈아 끼워 본다 해도 우리 모두 백 년 정도 더 사는 게 최대겠지? 그러면 잔뜩 유예 해놓은 슬픔이 몰려올 거야. 잔뜩 밀린 고지서처럼. 그러니까 조금씩 미리 슬퍼 놓을게. 나도 아마 그때까지는 못살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