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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성 Apr 19. 2024

그녀는 내 마음의 섬유유연제야

  『빅뱅 이론』은 CBS에서 12년간 방영된 드라마다. 캘텍에서 근무하는 셸든 쿠퍼와 레너드 호프스태터는 룸메이트이자 둘도 없는 친구고 직장 동료다. 그들의 이웃집엔 네브래스카에서 배우의 꿈을 안고 상경한 페니 텔러가 살고 있다. 그녀는 식사 시간마다 레너드의 집에 찾아간다. 직장 동료이자 친구인 하워드 왈로위츠와 라제시 쿠스라팔리는 셸든과 레너드의 집에서 함께 밥을 먹고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에피소드는 매번 비슷한 구도로 시작된다. 이 좌충우돌 시공의 발랄한 몸짓에 이끌려 몸을 맡겼으나 이내 짐짓 당황했다. 가까워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멀어짐에 대한 이야기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거긴 내 자리야.” 드라마를 본다면 아마 가장 많이 듣게 될 셸든의 유행어다. 노크를 세 번 하며 이름을 세 번 부른다거나 토요일은 빨래하는 날이니 토요일에만 빨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셸든. 그의 ‘독특한’ 언행은 이미 주변에서 유명하다. 그렇게 셸든과 ‘함무니’를 제외한 누구도 앉을 수 없는 셸든의 자리를 중심으로 셸든 유니버스 사가는 탄생한다.

  셸든을 제외한 등장인물들의 최대 관심사는 만족스러운 연애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 셸든의 연구 목표가 노벨물리학상을 받아 유명해지고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것임을 생각하면 이들의 목표는 그리 다르지 않아 보인다.

  누가 이런 사람을 사랑하겠는가, 라는 질문에서 한 단어를 지울 수 있다면 사랑을 지우겠다. 저 질문은 꼭 인생을 희생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누구도 그럴 필요가 없지만, 세상에는 이런 나를 참아주는 사람이 있다. 그렇기에 이런 나를 나도 참아본다. 나를 참아준다는 건 꼭 사랑 하나 때문에 일어나는 해프닝이 아니다. 참아주는 사람에겐 훌륭한 과학자의 자세가 깃들어 있다. 그 자세는 의심하는 자세이다. 그러니 사랑 없이 의심을 품고 접근해야 그가 정말 ‘그런’ 사람인지 알아볼 수 있다. 마침내 사랑이 검출되는가? 그것을 확인해 보고 싶다.

  그렇더라도 셸든의 행보는 정말 참아주기 힘든 것이다. 그가 생각보다 합리적으로 말하고 있다는 생각(달리 저항할 방법도 없다) 또는 착각이 들 만큼 그의 장광설은 듣는 사람을 체념하게 만든다. 셸든은 자신의 지적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을 개탄스러워 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평범함을 품고 있다. 그는 그 사실이 무엇보다 두렵다. 늘 이야기의 중심이 되길 원하는 셸든은 사랑받고 싶기에(셸든은 “나보다 덜 똑똑한 사람들을 위해 눈물 흘”린다) 변화를 원하지 않지만, 그런 변화 속에 해답과 사랑이 숨어있음을 깨닫는다.

  셸든과 친구들의 대화는 대부분 대학의 카페테리아나 배달 음식을 나눠 먹는 소파에서 시작된다. 우리의 일상이 이토록 단조로운 걸까. 하지만 우리는 새로움을 위해 다시 대화에 뛰어든다. 극의 연속성을 위해서인지 접시를 한없이 뒤적이는 이들은 점점 하나의 유사 가족처럼 보인다. 하워드의 엄마 같은 사랑 버나데트. 누나와 동생 같은 셸든과 페니. 레너드에겐 셸든의 쌍둥이처럼 느껴지는 에이미. 그리고 우리의 못 말리는 로맨티스트 파티시에 천문학자 라지와 그의 애견 시나몬까지. 함께 밥을 먹으면 식구가 된다고 하던가. 이미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인 친구들의 연애 사업이 흥행 가도를 달릴수록 이들의 꿈 같은 ‘스타워즈 올나잇’의 시간도 점점 끝이 보이는 것 같다. 이쯤에서 셸든의 “그럼 우린 주말마다 모여 게임하는 것도 못 하게 되잖아.”하는 평소 같은 투정이 슬펐던 건 나뿐이었을까.

  그런 셸든이 “그녀는 내 마음의 섬유유연제야!”라는 탄성을 내질렀을 때. 사랑을 확인하는 연인들은 서로의 성긴 우주를 관측하고 감동한다. 멀어짐 앞에서도 그들이 갖는 태도는 단단하고 유머러스하다. 그들은 그저 각자의 식탁을 차리고 여전히 명랑한 대화를 이어간다.

  캘텍의 과학자인 셸든과 친구들은 일찍이 우주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있었다. 그들은 중력의 원리와 작용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사람들이고 현상 앞에 경탄할 줄을 안다. 이제 ‘이런’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는 사랑을 발견한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들의 모난 점과 사랑스러운 점을 설명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모난 점이 어쩐지 또 사랑스럽다는 이상스러운 상태를 경험한다. 

  우리는 태양으로부터 조금씩 멀어지는 중이다. 지식을 쥐어짜(너무 울지 마, 셸든) 말하자면 전자기력은 붙잡은 손을 밀어내는 중이고 우리의 관계는 그렇게 점점 소원해지는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라는 이상함이 있으면 너라는 완벽함이 있고 나라는 특별함이 있다면 너라는 평범함이 있다. 어떤 따스한 오후 우리를 다시 만나게 할지도 모르는 사랑스럽고 웃긴 힘이 있다고 믿는다면 아직 명랑함을 잃지 않아도 좋겠다.

  마음의 섬유유연제가 있으니까. 부드럽게 웃으며 멀어질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우리가 좋고 때로 죄송스럽다. 하지만 섭섭함은 정말 어떡하면 좋을까. 미국의 만화가 찰스 먼로 슐츠의 『피너츠』 완결편에 실린 그의 말이 자꾸 떠올랐다. “찰리 브라운, 스누피, 라이너스, 루시…… 어떻게 내가 그들을 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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