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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성 Apr 28. 2024

게임에 대한 단상 2

  『심즈』는 욕구에 대한 게임이다. 심즈 세계에서 캐릭터는 심이라고 불린다. 심은 많다. 그래서 심즈다. 심이 평화롭게 집 앞을 걸어 다니고 자꾸 나의 심을 파티에 초대한다.

  심즈는 간단한 게임이다. 배고프면 밥을 먹고, 피곤하면 잠을 자는 등의 일을 처리하면 된다. 심즈를 하는 건 소설을 쓰는 것과 비슷하다. 인물을 만들고 배경에 떨어뜨리면 사건이 일어난다. 물론 메뉴에 들어가서 심의 자유의지를 끌 수도 있다. 그러면 심은 멍하니 서 있다. 자유의지가 있더라도 심이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밥을 먹었으면 그릇을 치우고, 사랑을 나누다가 용변이 급하면 화장실에 보내야 한다. 그것은 이 모든 걸 지켜보는 플레이어의 몫이다.

  어린 시절 심즈를 처음 시작했을 때 나는 퍽 놀랐다. 나의 심을 다정한 성격으로 만들거나 야비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누가 야비한 걸 좋아하겠어? 나는 세상에서 제일 재미없는(개인차가 있다) 심을 만들고 기본 자금이 허락하는 집에 이사 가서 밥도 먹고 작가도 되었다. 하다 보니 친구 심도 생겼다. 친구 심은 가끔 집에 찾아왔다. 친구 심은 내 심이 없는 거실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봤다. 갑자기 욕실에서 샤워를 하기도 했다. 그게 너의 욕구였구나? 친구 심이 주방이 더럽다며 코를 막을 땐 내 다정한 심을 시켜 ‘집에 가달라고 말하기’를 세 번 눌렀다. 다행히 첫 번째에서 알아듣고 집에 갔다.

  왜 그게 기억에 남았지? 내 심이 늙었기 때문이다. 내 심은 늙더니 죽었다. 작은 안내창이 하나 나왔다. “이 집에 마지막 남은 심이 죽었습니다. 더 많은 심을 만들거나 라이브러리에서 다른 가족을 입주시키세요.” 마을 화면으로 나가면 마을의 전경이 다 보인다. 다정한 내 심의 장례식에 모두 왔을까.

  소설론에 따르면 인물의 욕망이 어떻다거나 우리가 고민하고 살아가는 모습은 더 먼 관점에서 볼 때 어떻다고 하는 말은 모른다. 다만, 나는 내 심과 나에게 일어난 사건에 대해 말하고 싶다. 통계적으로 하루에 약 이만 명의 심이 죽는다고 한다. 그걸 게임 회사에서 세고 있었다니, 나도 다정한 내 심을 방에 가뒀다가 풀어주거나 별 이유 없이 쓰레기통을 걷어차 봤다. 그때마다 심은 반응을 보인다. 그러다가 문득 ‘입양하기’를 눌렀다. 아기가 집으로 왔다.

  나는 마을 화면으로 나가서 ‘다른 가족과 합치기’를 눌렀다가 다시 내 다정한 심만 분리했다. 아기는 그쪽에서 키웠다. 다정한 내 심은 조용한 집으로 돌아왔다.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친구 심을 부르려고 관계 메뉴를 열었는데, 아기가 있었다. 그날 나의 심은 일찍 잠에 들었다. 친구 심이 문을 두드렸는데, 내 심은 깨지 않았다. 다정한 내 심은 아주 피곤했다.

  내 심의 무덤 앞에 그 애가 왔을까. 그게 갑자기 생각났다. 가끔 작은 심들이 내 집 앞을 걸어갔다. 다정한 내 심은 집 안에 있었다. 소설을 쓰느라 내 심은 그것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것을 알았다면 문을 열고 나가서 다정하게 인사했겠지. 안녕? 많이 컸구나. 어디 가는 길이니. 주스나 쿠키를 먹겠니. 학교는 어떻니. 나를 기억하고 있니.

  게임적인 허용으로 죽은 심의 영혼이 가끔 어딘가에 나타나는 걸 볼 수 있었다. 죽은 심은 욕구가 없다. 죽은 심은 주변을 돌아다니고, 그것을 목격한 다른 심은 큰 충격에 빠지거나 눈물을 흘린다. 

  나는 심심한 나머지 게임도 하고 소설도 썼다. 가끔 생각한다. 좋은 일을 하고 살아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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