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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성 Jul 02.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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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원을 찾았다. 선생님 저는 미친 게 아니에요. 저기 보세요. 지금도 창밖에 까마귀가 있어요. 제가 건물을 나서기만 기다리고 있어요. 천변에도 공원에도 있어요. 거리를 걸을 땐 까마귀가 머리 위를 날아요. 저를 따라와요. 저를 보고 있어요. 가로등 위에서 나무 위에서 모이를 주다가 잠든 노인의 어깨 위에서 저를 보고 있어요. 제가 잠을 자든 밥을 먹든 사랑을 하든 거기 까마귀가 있어요. 제가 일을 할 때도 창밖에서 저를 지켜봐요. 선생님 이게 어떻게 된 거죠.

  “굴 좋아하시죠?” 선생님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방으로 간호사가 들어왔다. 설문에 응하고, 피를 뽑고, 조금 앉아 있었다. 주사를 맞고 잠시 잠들었다.

  눈을 뜨자, 어두웠다. 눈을 뜨셨군요, 말한 것은 옆에 앉은 사람이었다. 나를 향해 있는 그 사람의 무릎 때문에 내가 누워있다는 걸 알았다. 침대에 앉아 그 사람과 마주 봤다.

  “당신은 이제 인간으로 분류되지 않습니다. 몸에 플라스틱이 많이 쌓였어요. 잘 모르시겠지만, 당신의 몸은 미세하게 반짝거려요. 당신은 플라스틱입니다.”

  제가 플라스틱이라고요? 아아, 과연 그래서 그랬군. 어디로 가는 겁니까? 플라스틱이 모여있는 곳으로 갑니다. 죽는 겁니까? 죽는다는 개념이 바뀌었습니다. 그냥 내려도 될까요? 아니 안 됩니다. 이게 최선이에요. 그런 문답이 있었다. 달리는 버스 안에는 누워있는 사람이 많았다. 아직 곤히 잠들어 있었다. 갑자기 눈을 뜨면 인간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아직은 인간처럼 보인다.

  도착한 곳은 또 다른 병원 같은 곳이었다. 잘 가꾼 화단에는 벌이 분주하게 날고 있었다. 우리는 길을 따라 걸었다. 걷는 동안 깨어난 사람들이 설명을 듣고 있었다. 우는 사람도 보이고, 몇 번이나 같은 질문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는 건물에 들어갔다.

  안은 넓고 조용했다. 로비 중앙부에 분수대가 있었다. 세제로 깨끗하게 닦은 대리석 바닥이 엷은 빛을 흡수했다. 천장은 까마득하게 높았다. 왼쪽으로 이어진 계단을 오르면 한쪽 벽이 창문인 밝은 구역이 계속 나왔다. 거대한 나무에서 뻗은 가지 위로 빼곡하게 까마귀가 앉아 있었다.

  잠시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의자를 줬다는 점이 마음을 어지럽게 했다. 조금 있으니 내 이름을 부르기까지 했다. 부탁만 하면 전화를 하거나 물을 마시거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복도를 따라 울리는 발소리를 듣고 있으면 방에 도착했다.

  뭘 하면 될까요? 플라스틱을 추출할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죠? 형태를 유지하지 못할 거예요. 아플까요? 추출 이후에 다시 돌아온 경우가 없어서… 괜찮아질 겁니다. 그런 문답이 있었다. 내가 한 질문 같기도 하고 내가 대답한 대답 같기도 했다. 모든 표정과 음정의 높낮이가 여기를 벗어나 있었다. 나는 모든 것을 제대로 구분할 수 없었다. 나는 퍽 단순해 보이는 장치가 달린 의자에 앉았다. 전극을 붙이고, 길쭉한 빨대 모양 관을 입에 물자, 의자가 뒤로 천천히 넘어갔다.

  저는 뭐가 될까요?

  “물병으로 분류됩니다.”

  와우, 물병이라.

  주변 기계들이 낮게 떨었다. 추출이 시작되었다. 입에 문 빨대 모양 관으로 뜨거운 액체가 빨려 나갔다. 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내가 반짝거리고 있었다니, 새의 눈으로 보면 세상은 반짝거리는군. 저게 플라스틱인가. 아니 저건 나인가. 아마 플라스틱 쪽으로 의식이 넘어가지는 않을 것 같았다. 잠깐 빨대 모양 관에서 입을 떼고 말했다. 저는 폴리에스터가 되고 싶은데요.

  “제가 입게 해주신다면.”

  세탁을 자주 하는 편이에요?

  “그렇습니다.”

  좋습니다.

  “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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