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찮음은 종종 나를 멈추게 하는 감정으로 불린다.
그러나 귀찮음은 감정·몸·생각이 합쳐져 만들어낸 ‘결정 직전의 상태’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것은 멈춤이 아니라 하나의 질문에 가깝다. 지금의 나는, 이 행동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더 흥미로운 지점은 슬픔은 슬픔 자체로 느껴지고, 기쁨은 기쁨 자체로 빛나는데, 귀찮음은 항상 묻고 있다. “지금 나는 왜 멈추려고 하지?”
몸은 언제나 정직하다. 에너지가 바닥난 날, 귀찮음은 조용히 나를 의자에 앉힌다. 더 나아가려는 발걸음 대신, 잠시 나를 나에게 돌려보낸다. 이때의 귀찮음은 저항이 아니라 보호다. 나를 지키기 위해 작동하는 가장 원초적인 지혜.
그러나 모든 귀찮음이 쉼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날의 귀찮음은 시작의 문턱에서 생겨난다. 아직 보이지 않는 결과, 끝을 알 수 없는 과정 앞에서 의식은 미묘하게 뒤로 물러선다. 그때 우리는 말한다. “하기 싫다”라고. 그러나 그것은 거절이 아니라, 해석되지 않은 감정의 다른 이름이다. “낯설다”, “두렵다”, “확신이 없다”는 고백. 그래서 귀찮음은 하나의 감각이 아니라 여러 층으로 이루어진 신호다. 회복을 요구하는 몸의 언어이기도 하고, 회피를 선택하는 마음의 전략이기도 하며, 때로는 나의 방향이 어긋났음을 알리는 깊은 정렬의 신호이기도 하다. 우리는 귀찮음을 이겨내야 할 대상으로 여기지만 그것은 이겨야 할 적이 아니라 해석해야 할 메시지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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