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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NG Jun 13. 2024

뒤통수 맞은 미니멀리즘

비우고 버리고 다시 채우는 욕심의 끝은 어디일까

우리 집엔 여백이 많다. 

적어도 난 그렇게 믿었었다. 


뭔가 공간이 꽉 차 보이는 게 부담스러웠다. 거실엔 아이들 장난감이 없었고 식탁 위는 식사 시간 외엔 아무 물건도 올려놓지 않으려 애썼다. 바닥과 비슷한 색감의 소파 하나에 신혼 때 큰 맘먹고 마련한 우드 수납장 하나, 창가 한편에 식물 몇 개로 거실의 허전함을 달래준 정도였다. 벽에는 못 하나 박지 않았고 바닥 모서리가 휑하니 드러나도 그런 여백들이 내 마음의 여유를 주는 듯해서 좋았다. 난 내가 초미니멀리스트는 아니어도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며 살고 있다고 믿었다. 


지난 4월부터 한 달 넘는 시간 동안 천천히 해외 이주를 준비하면서 나의 이런 믿음은 가차 없이 깨지고 말았다. 난 눈에 보이는 곳에서만 미니멀이었다. 거실에 하나 있는 수납장 속엔 써먹지도 않는 잔 짐들이 차고 넘쳤다. 휴대폰을 바꿀 때마다 왜 그 케이스는 버리지도 않고 모아두는 것인지, 필요도 없는 영수증과 자잘한 전단지, S자 고리들은 왜 모아둔 것인지 모르겠다. 언젠가 필요하겠지 싶어서, 혹시나 싶어서 그 순간순간 모아둔 것들은 죄다 쓰레기통으로 직행했다. 

특히 아이들에 대한 물건들은 정말 버려도 버려도 끝이 없었다. 잘하지도 않는 헤어핀들은 왜 그렇게 많은지, 색연필, 사인펜, 온갖 스티커와 색종이... 하나하나 정리할수록 내 욕심, 욕망이 숨어있는 곳이 여실히 그대로 드러나는 듯했다. 그리고 뭔가 부끄러웠다. 내가 추구하던 생각과 행동이 달랐던 아이러니한 느낌이 싫었다.  


붙박이장. 그래 붙박이장 속이 참 어마했다. 그때 그때 이뻐서 입어보려고 채워둔 옷들은 도대체 몇 번이나 입었을까? 맨날 청바지에 티셔츠 바람으로 살면서 왜 이렇게 버리지 못하고 몇 년을 그냥 뒀을까? 멋쟁이로 살고 싶은 마음이 잘못된 것은 아닐 텐데 난 왜 이주를 준비하면서 이 짐들을 다 버릴 때 느끼는 아쉬움보다 가져갈 때의 부담감을 더 느끼는 걸까. 정작 내가 정말 가져가야 할 물건들은 여기서 얼마나 될까?

 

'나는 욕심 없이 산 게 아니라 욕심을 숨기고 살았구나'


욕심 없는 그 담백하고 단순한 모양새를 갖고 싶은데 내 마음속 욕심을 비워서 그렇게 만든 게 아니라 꼭꼭 숨겨놓았던 거였다. 그리고 정말 필요한 것만 챙겨야 하는 이 순간. 내 욕심들이 드러나니 창피했다. 마치 거짓 미니멀리즘이었던 것만 같아서. 


맥시멀이면 어떻고 미니멀이면 어때, 내 마음대로 사는 거지!

하지만 난 그냥 단순하게 살고 싶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다는 걸 언제부터인가 알기 시작했다. 몸도 바쁘고 마음도 복잡해지는 30대 중후반을 지나면서 그런 생각이 강해지는 것 같다. 짐을 늘리기보다 짐을 줄여가며, 여유 공간을 만들며 사는 게 나에게 맞다는 걸 안다. 

꼭 2+1을 사서 쟁여놔야 하는 건 아니다. 잘 소비하는 물건이라고 없는 공간까지 만들어가며 몇 박스씩 사는 것보다 적당한 양을 사서 적당한 여백이 보이는 것, 빡빡하게 채워둔 냉장고에서 오래된 식재료를 버리며 쓰레기봉투를 채우는 것보다 빈 공간이 중간중간 뚫려있는 냉장고를 두고 살고 싶다. 


역시 집은 짐이 없어야 예쁘다.

역시 욕심은 버려야 마음이 편하다. 


필요 없는 욕심은 버리고 새로운 곳에서 더 미니멀하게 살 수 있을까? 아니면 그냥 안된다고 인정하게 될까?

뒤통수 맞은 미니멀리즘에게 다시 한번 더 보고 싶다고 말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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