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블루문 Sep 27. 2024

영화 촉촉 노가리 (2) - 르망과 스티브 맥퀸


* 영화 촉촉 노가리는 필자의 기억속에 산재한 영화 이야기를 노가리 풀듯 술술 풀어내는 입담코너입니다.


영화 <포드 대 페라리>는 자동차 선진국 미국의 빛과 그림자를 가감없이 그려낸 실화다. 1960년대까지 포드사는 생활 자동차에 있어서는 세계 넘버원이지만 자동차 경주에서 우승한 경험이 없었다. 대량생산으로 갑부가 됐지만 경주대회에서는 이탈리아 페라리를 따라갈 수 없자 회장 헨리 포드 2세는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백지수표를 내건다. 한때 세계적인 경주대회 르망24의 우승자였던 캐롤 쉘비(맷 데이먼)와 정비공이자 드라이버인 켄 마일즈(크리스찬 베일)는 페라리 대항마로 특수제조된 괴물자동차 GT40을 급조, 대회에 참여하게 된다.



영화속에 나온 프랑스의 르망24대회. 놀랍게도 이 레이스는 24시간 연속으로 진행된다. 24시간 편의점도 아니고, 24시간 설렁탕이나 감자탕 집도 아니고 말이다. 놀라운 건, 이 대회 역사가 100년에 육박하고 세계 최고의 자동차 선진국이 참여해 왔다는 점이다.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자동차 경주의 긴장감과 속도감을 관객이 직접 느끼도록 하는 건 쉽지 않은 작업이다. 그런 면에서 <포드 대 페라리>는 경주 도중 바퀴를 갈고 주유를 하며 1초를 앞당기려는 레이싱의 긴장감을 관객에게 잘 전달한 스릴러이기도 하다. 엔진, 밸브, 캬브레이터, 브레이크, 펌프 등 부품이 교체되면서 자동차 성능이 확연히 개선되는 장면에서는 매니어들의 환호성이 터져나올 법 하다. 




그런데 50여년전 이미 이 경주대회가 영화로 만들어진바 있다. 1971년 스티브 맥퀸 주연의 전설적인 영화 <르망>은 화려하게 편집된 장면을 통해 새로운 스포츠의 스릴을 다루고자 했다. 다만 다큐멘터리처럼 경주장면만 계속 보여줘 흥행엔 참패, 관객들은 매우 어지러웠다고 한다.  


스티브 맥퀸이 누군가. <대탈주>, <황야의 7인>, <빠삐용>, <타워링>으로 70년대 우리나라 영화팬들의 인기를 한 몸에 모았던 장본인이자 50세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비운의 주인공으로 늘 기억된 추억의 스타가 아닌가. 



오래도록 스티브 맥퀸을 잊고 살다가 그를 다시 만난 건 서울역 로비에서였다. 큼지막한 전광판에 자동차 경주복을 입은 '원조 터프가이'와 만나는 순간 나는 그 자리에 멈춰서고 말았다. 마치 살아있는 것 같은 저 표정. 알고 보니 그가 영화에서 찼던 시계 '태그 호이어'의 광고였다. 


사실 '르망'은 영화 제목보다도 1988~1993년에 대우자동차에서 출시된 빨간색 차를 떠올리게 만든다. 그리고 MBC드라마에서 배우 최명길이 차도녀의 이미지로 이 차를 몰고 나타났던 기억이 난다. 1989년 르망 광고에서는 스타십의 "Count on me"가 백뮤직으로 쓰이기도 했다(나, 이게 왜 기억나지?).




스티브 맥퀸은 <러브 스토리>의 비련의 여주인공 알리 맥그로우와 결혼한다. 둘은 뜨겁게 사랑했으나 몇 년후 이혼했는데 이듬해인 1980년 스티브 맥퀸이 사망했다. 악성 중피종이라고 석면에서 유래된 암이 전이가 되었고, 어렵게 종양제거수술을 받지만 다음 날 심장마비로 맥없이 떠났다. 알리 맥그로우는 이후 영화판에 다시 등장하지 않았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했던가. 시간이 흘러 스티브 맥퀸 뿐 아니라  대우자동차 르망도 이젠 역사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대신 그가 팔목에 찼던 시계만이 형형하게 빛났다.


"에메랄드같은 눈동자와 고급진 향기,

바퀴(바쁜 일상)에 걸리고

따뜻한 오후의 강철(현실) 속에서 길을 잃었네

오, 날 믿어요, 여인이여.

내 사랑을 믿어요." 


- Starship, Count on me 중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