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촉촉 노가리 - 필자의 머릿속 어딘가 저장된 오래된 영화이야기를 노가리 풀 듯 술술 푸는 코너입니다.
우리나라 중년들은 이승현을 알거야. 이름을 모른다면 얄개는 알겠지. 얄개란 얄미운 개구장이의 준말이야. 어릴적 이승현은 청춘스타였어. '고교 얄개', '고교 우량아', '에너지 선생' 등 고교 코미디물의 주연을 도맡았으니까.
1967년에 데뷔해서 큰 인기를 끌다가 고교시절 스타덤에 오르지. 영화 "꼬마 신랑"의 아역스타였던 김정훈도 <고교 얄개>에 출연해.
<고교얄개>는 한마디로 분출구조차 없던 70년대 학생들을 유일하게 웃겨주던 영화였지. 교장선생님에게 당돌하게 할 말을 하고, 연애하는 누나 정윤희의 남친 하명중을 골려주고, 교실에서 친구에게 장난치는 지극히 정상적인 영화인데도 비정상적인 시대에는 열광했지.
하지만 얄개가 끝난 후 이승현은 더 이상 갈 데가 없었어. 성인배우로 등극하기엔 벽이 너무 높았어. 그리고 한국영화의 암흑기이기도 했지. 80년대 초에는 3S정책에 걸맞게 <꽃순이를 아시나요> 등 온갖 호스티스물로만 도배되다보니 얄개가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거야.
이후 얄개형은 캐나다로 유학을 갔지만 어머니가 쓰러져서 다시 돌아와 식당, 건물 청소 등 아르바이트를 전전하지. 2000년 경 결혼했고 아이도 생겼지만 생활고가 이어지면서 아내와 이혼했고, 아들과도 연락이 끊겼어.
그런데 마음 잡고 살아갈 기회는 있었던 것 같아. 하지만 그 놈의 얄개스타가 항상 그의 앞길을 막았어. 그는 영화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하고 기웃거리다가 여러번 사기를 당해.
얄개형이 문제인지 자꾸만 그를 추억에서 끌어내는 사람들이 문제인지는 잘 모르겠어. 하지만 분명한 건 지금 만난 두번째 부인이 어렵사리 전집을 해서 먹여살리는데 그 와중에 또 '얄개 카페'를 여는 바람에 그나마 모아둔 돈을 다 날렸다는 거.
얄개형은 아직도 자기를 아껴주는 팬분들에게 영화로 보답하겠다고 해. 최근까지도 영화감독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는데 글쎄.
우선 본인부터 행복했으면 좋겠어.
생활고부터 해결하고 그 다음이 영화지.
물론 70년대 스타들이 비극적인 삶을 산 건 어쩌면 당연해. 한때 스타라고 불렸지만 더 이상 그 스타를 불러주지 않는 고통. <겨울여자>의 김추련씨도 그렇게 고통받다가 세상을 떠났지. 잊혀진 건 이승현 만이 아닐거야. 아역스타는 성공하지 못한다는 그 불문율이 무서운 것 같아.
미국에서도 청춘스타는 성인이 되어 계속 스타덤을 유지하지 못했어. <아웃사이더스>의 맷 딜런과 랄프 마치오는 80년대 초 전 세계적인 신드롬을 낳았던 스타였지. 같이 출연했던 토마스 하웰, 로브 로, 에밀리오 에스테베즈도 한 두 편 더 찍은 후 사그라졌어. 그 멤버중에 지금까지 살아남은 건 오직 톰 크루즈야.
그러니 얄개형 너무 억울해 하지는 말았으면 해.
수많은 댓글처럼 "아직도 정신 못차렸네"라고 거들고 싶진 않아. 내 어릴적 스타의 팬으로서 나는 영화감독으로 성공하길 누구보다 바라니까.
어쩌면 얄개형의 지금 모습 자체가 하나의 영화인지도 모르겠어. 다큐를 보면서 눈물이 났으니까. 천하의 고교얄개가 왜 이렇게 상했나. 그 와중에도 "내년엔 크랑크인이 될 겁니다."라고 아직도 70년대 말투를 쓰는 형을 보며 마음이 얼마나 짠하던지.
오늘 촉촉 노가리엔 내장이 섞였나.
왜 이렇게 쓰지. ㅠ
암튼 얄개 형, 힘 내!
"노란 리본 그 소녀 못 잊어.
정말 못 잊어. 정말 그리워.
언제 다시 만나려나 그 소녀.
못 잊겠네 그리워라.
어여쁜 그대
노란 리본 그 소녀.
정말 못 잊겠네."
-장현 '노란 리본 그 소녀' 고교얄개 삽입곡(19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