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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문 Oct 06. 2024

영화 촉촉 노가리(5) - 존 윅과 람보의 공통점


키아누 리브스의 <존 윅>을 보지 않았던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다만, 어쩌다 타이밍을 놓쳤는데 곧이어 속편이 나와서 미루고 미루었다. 사실 그의 헤어스타일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것도 미루게 된 이유 중 하나이다. <매트릭스>의 네오는 하얗다 못해 창백한 얼굴에 면도까지 완벽하게 해서 시퍼런 턱선이 멋있었다. 검은 가죽 수트로 총알을 완벽하게 피해 가던 그 모습이 덥수룩한 수염의 긴 머리로 덮이는 게 못내 싫었던 것도 있다. 



우여곡절 끝에 개봉 십 년이 지나 <존 윅> 1편을 본 소감은 통쾌했다. 이유 있는 복수에 군더더기 없는 플롯, 파면 팔수록 호기심이 생기는 존의 과거 등이 몰입감을 더해 주었다. 1969년식 머스탱을 모는 존은 암흑가의 킬러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운명의 사랑을 만나 손을 씻고 조직을 나왔다. 사랑하던 아내는 병으로 떠나면서 홀로 남은 남편을 위해 귀여운 비글 강아지 '데이지'를 보낸다. 살아야 할 희망이 없던 존은 아내 대신 자신의 아침을 깨워주는 사랑스러운 데이지 덕분에 근근이 삶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운명은 왜 이리 모진가. 러시아계 갱단의 두목 아들 요세프가 존 윅의 차를 탐내고 훔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겁에 질린 데이지를 발로 차서 죽이고 만다. 그래서 존은 콘크리트 바닥을 오햄머로 부수고 그 안에 모셔둔 무기들을 꺼내게 된다.



진한 어둠이 내리는 브룩클린 거리. 네온에 휩싸인 도시에서 요세프를 찾아 복수를 꾀하는 존은 몸에 밴 사격 실력과 능숙한 타격감을 자랑한다. 그를 아는 선수들끼리는 모종의 결속도 존재했다. 이를테면 자상을 입은 복부 치료에 능숙한 의사가 동원되어 상처를 꿰매준다. 그리고 환자에게 이상한 처방을 내린다. “절대로 움직이면 안 되죠. 하지만 처리할 일이 생기면 이 약 두 알을 드세요.



마취도 하지 않고 몸에 생 바느질을 하는 장면에서 나는 전설의 <람보 1편>을 떠올렸다. 그리고 보니 플롯이 비슷하다. 월남전에서 만난 전우를 만나기 위해 시골로 온 람보에게 경찰이 시비를 건다. 왜 칼을 몸에 지니고 다니냐, 옷차림이 불량해 보인다. 거기까진 좋았는데 월남전의 극심한 트라우마를 가진 람보를 빡치게 만드는 과도한 몸수색을하자 람보는 숲속으로 뛰어 들어가 게릴라전을 준비한다. 이때부터 그의 행동은 테러가 아니라 전쟁이었다. 50미터 절벽에서 떨어진 람보는 나뭇가지에 긁혀 팔뚝에서 낭자한 피를 흘리는데 바늘을 꺼내 스스로 꿰매기 시작했다. 난생처음 보는 치료 장면에 기함했던 기억이 난다.




심지어 이름도 같은 존 람보와 존 윅. 극 중 대사처럼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 세월이 변할 뿐. 영화도 그랬다. 람보 한 명을 검거하기 위해 수많은 경찰과 군인이 투입되었듯이 존 윅을 잡기 위해 조직원 수십명이 달라붙는다. 요즘 인기리에 방영중인 “흑백요리사”들의 정갈한 다이닝처럼 존 윅은 다양한 레시피로 조직원들을 하나둘씩 처단한다. 연필로만 세 명을 처치했다는 두목 비고의 말처럼 존 윅은 주변의 재료를 가리지 않았다. 칼이면 칼, 권총이면 권총, 그리고 기관총까지. 존 람보 역시 막판에는 M60를 탈취하여 맞섰던 기억이 난다. 



언제나 그렇듯이 의문이 남는 건 왜 두목은 잡힌 존 윅을 눈앞에서 처리하지 않았을까. 거기서 현실감이 급감하지만 요세프가 “그깟 별것도 아닌 강아지 때문에...”라고 소리치는 장면에서 리얼리즘에 대한 관객의 의문은 상쇄되고 분노만 남는다. 그 개는 아내가 보내준 가족이라고. 



<람보>의 엔딩에 흐르던 구슬픈 주제곡 It's a long road와는 달리 러닝타임 내내 하드록이 깔리고 풀 웨폰(full weapon)이 동원되는 이 무지막지한 복수극에 왜 사람들은 환호할까. 그건 범죄자를 응징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법치주의에 대한 반발심 때문일 것이다. 사랑하는 딸을 길거리에서 무참히 살해한 범인의 형량은 최고 무기징역이지만 몇 년 지나면 감형되어 사회로 복귀한다. 사랑하는 아내가 산책하다가 묻지마 살인에 희생되었는데 그 범인을 교정하기 위해 우리들의 세금이 투입된다. 과연 희생자 가족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두목 비고가 도망칠 때 탄 SUV차량은 시보레 타호. 타호는 캘리포니아-네바다 경계에 걸친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이다. <시카리오>에서 CIA가 마약 카르텔을 잡으러 멕시코 후아레즈로 줄을 지어 들어가던 그 차량이다. 존 윅은 타호를 멈추기 위해 자신의 69년식 머스탱을 희생시킨다. 결국 애견도 애마 자동차도 운명을 다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존은 동물병원에 들어가 소독약으로 두목에게 찔린 복부를 치료한다. 어릴 때 유행하던 “깐이마 또까”가 아니라 “찌른 배 또 찔러”에 당했다. 그리고 동물병원에서 강아지를 고른다. 이번엔 귀여운 비글이 아니다. 맹견중의 맹견 핏불 테리어. 고통을 참아내는 인내력과 강한 힘 때문에 투견으로 이용되던 견종으로 <원스어폰어타임 인 헐리우드>에서 브래드 피트를 도와 악당의 급소를 물어버린 그 개다. 결국 존 윅은 자신과 가장 닮은 개를 선택함으로써 운명의 좌표를 정했다. 이젠 직진이다. 오케이. 그렇다면 나도 후속편으로 직진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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