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수꾼>의 이제훈이 돌아왔다. <화란>의 홍사빈과 함께. 그리고 구교환과 함께.
북한을 배경으로 영화를 만들면 일단 관객들에게 호감을 반은 잃고 시작한다. 게다가 사투리와 소품도 마이너스 포인트다. 그런데 그 북한군 초소에서 배철수씨의 목소리가 들린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10년간의 군복무를 마쳐가는 규남(이제훈)은 매일 새벽 탈주로를 확인한다. 부대를 이탈하는 건 껌인데 한참을 달려 발목지뢰밭을 통과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래서 매일 한 두 개씩의 지뢰를 찾아 지도에 마킹한다. 이를 눈치챈 동혁(홍사빈)에 의해 첫번째 탈주시도가 엉망이 된 후 보위부의 리현상(구교환)은 꿀보직이라고 할 수 있는 사단장 지원병으로 규남을 추천한다. 어릴적 같이 살던 피아노 형은 그렇게 규남을 설득하지만 규남이 꿈꾸는 건 단순히 북한을 탈출하는 것이 아닌 걸 어쩌랴.
북한의 군생활과 계급문화를 통해 세상은 모순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탈주>는 여느 방식과는 다른 탈출 이야기를 전한다. 그건 자유를 소유한 크기의 차이다. 그나마 호의호식하는 보위부 장교 현상은 제한된 자유속에서 '그냥 살아간다'. 러시아 교향곡을 즐기며 피아노를 치는 그는 억눌린 자아를 해방하지 못한다. 그에 비해 '아문센'전기를 탐독하던 규남은 "죽어도 내가 죽고 살아도 내가 산다"는 필사즉생의 마음으로 삶을 내딛는다. 그런 점에서 굳이 북한이라는 공간이 아닌 대한민국에서도 펼쳐지는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묘한 상념에 젖어든다.
그렇다고 시종 심각한 게 아니고 긴장감속에 개그도 터진다. 왜? 우리의 구교환이 있으니까.
지뢰밭을 지나 들풀이 한없이 펼쳐진 초원을 트래킹하듯 걷다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남한이 나왔다. 총알을 피해 '잡풀새를 기기 시작하는' 규남의 모습을 보며 황순원의 단편소설 '학'이 떠올랐다. 이종필 감독은 분명히 이 소설을 떠올렸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