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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죠의 삶 Oct 11. 2023

엄마의 컬러링

단단했던 존재의 나약함에 대하여

  지친 몸과 마음을 이끌고 오랜만에 본가에 갔다. 집 안에 들어서니 뭔가 어수선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무슨 일이 있냐며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는 분주하게 움직이며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친한 친구가 병원에 입원해서 지금 나가봐야 한다고 말했다. 친구 분은 오늘 엄마와 점심을 함께 먹고 식당 계단을 내려오는 길에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고 한다. 엄마는 놀란 마음을 붙잡고 119에 신고하고, 응급실에서 입원 절차를 도와주고, 집으로 왔다. 지금까지 진정이 되지 않는 듯, 미세한 떨림을 보이는 엄마를 보니 나도 덩달아 불안해졌다. 이렇게 여린 사람이 어떻게 그 힘든 세월을 견뎠을까 찰나의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친구 분은 다행히도 곧 의식이 돌아왔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지만, 자식들이 모두 바빠서 지금 바로 올 수 없는 상황이어서 엄마가 가봐야 했다. 병원이 우리 집과 걸어서 15분 거리로 아주 가깝기도 하고 마음이 쓰여서 가만히 있지 못하겠다고 했다. 엄마는 연차를 쓰고 친구 분 병실에서 하루를 보내기로 결정했다. 병원 갈 짐을 싸는 것을 도와주고 병원까지 엄마를 데려다 주었다. 엄마의 놀란 마음을 조금이나마 살펴주고 싶었다.


  엄마를 병원 앞까지 데려다주고 나오는 길, 한 모자(母子)를 보았다. 엄마로 추정되는 환자복을 입은 중년 여성과 건장한 체격을 가진 아들이 헤어지기 아쉬운 듯 조곤조곤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서로를 꼬옥 안은 채로. 그 장면을 보자 덩달아 놀랐던 마음 때문인지 알 수 없는 감정들이 몰려왔다. 눈물이 차오를 것만 같았다. 인간에게 엄마라는 존재는 어떤 의미일까. 며칠 전 할머니가 엄마에게 생애 처음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했다. 엄마는 그 말을 듣고 하염 없이 울었다. ‘엄마’라는 두 글자는 인류 보편의 감정을 아우르는 뭉툭하고 단단한 단어이다. 언제나 나를 지켜줄 것만 같았던 존재가 점점 약해지고 희미해지는 느낌은 참을 수 없이 괴롭다. 생각만 해도 머리가 하얘지고 온 몸에 피가 순식간에 손끝, 발끝으로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병원 앞 모자(母子)를 보며, 엄마 친구의 입원을 보며 나도 모르게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은 순간을 떠올렸다.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며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거리에서 익숙한 멜로디가 들려왔다. ‘안녕, 내 사랑 그대여. 이제 내가 지켜줄게요.’ SG워너비의 ‘내사람’이었다. 이 노래를 들으면 마음이 붕뜨고 견딜 수 없는 그리움과 아련함이 찾아온다. 초등학생때, 우리 엄마의 컬러링이기 때문이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 엄마에게 연락을 하기 위해서는 공중전화로 뛰어가야 했다. 엄마는 항상 일을 하느라 바빴기에 연락이 잘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차가운 쇠의 감촉을 느끼며 다이얼을 눌러 수신자 부담 전화인 1541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면 SG워너비의 따뜻한 목소리가 흘러나왔고 나는 늘 초조한 마음으로 엄마의 목소리를 기다렸다. 전화를 받지 않을 때면 씁쓸한 마음으로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흘러나오는 그 노래의 짧은 구절을 지겹도록 반복해서 듣던 순간이 기억난다. 그러다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오면, 다급한 목소리로 ‘엄마! 나야’를 외쳤다. 그리고 엄마가 숫자 버튼을 눌러 계속 통화를 하겠다는 의사를 표하면 그제서야 통화를 할 수 있었다. 수화기 넘어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기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그런 때가 있었다. 엄마의 허락을 받은 나는 마음 편하게 문제들을 해결했다. 세월은 빠르게 흘렀고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우리 엄마는 나이가 들었다. 슬프게도 나는 더 이상 엄마의 컬러링을 들으며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가 아니게 되어버렸다. 지겹게 들었던 그 노래의 가사가 귀에 꽂혔다. ‘안녕 내사랑 그대여. 이제 내가 지켜줄게요. 못난 날 믿고 참고 기다려줘서 고마워요. 안녕 내사람 그대여. 영원토록 사랑할게요. 다시 태어나서 사랑한대도 그대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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