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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오톱 Jan 29. 2024

1과 2 사이

     "웬 에반게리온? 새로 시작한 거야?"

평소에 애니메이션을 자주 보던 남동생이 못 보던 애니를 들고 와서는 그 어느 때보다 집중하고 있었다. 

    

    "네가 이걸 어떻게 알아? 꽤 오래된 건데"

요즘 나오는 애니메이션과는 다른 특이한 캐릭터와 연출에 나도 모르게 동생 옆에 앉았다. 30분이 흘렀을까. 대충 등장인물들 얼굴이 익숙해질 만할 때까지도 도저히 내용이 감이 안 잡혀서 동생에게 물어봐야겠다고 결심했다. 하나하나 알다보면 대충 큰 그림은 나오겠지, 생각하고 있는 와중에 마침 의식을 잃은 주인공과 연결된 거대 로봇(기체)이 제어력을 잃고 날뛰는 장면이 나왔다. 거대한 로봇 주위로 어떤 투명한 막 같은 것이 생겨나는 장면이었다. 


    "근데 저 막 같은 건 뭐야? 그리고 쟤(거대 로봇)는 왜 저래?"

시선은 TV에 고정하면서도 웬일인지 입으로는 친절히 설명해주었다.

    

    "그니까 저게 AT필드라는 건데, 일종의 방어막 같은 거야. 특정한 때가 되면은 저렇게 발동이 되는데, 왜 그런지는 나도 아직 다 안봐서 모르겠어".

AT필드라... 왠지 중요한 무언가일 것 같았다. 뭔가 평범한 애니는 아닐 거라는 생각에 그 길로 유튜브에 검색을 해보았다. 

AT필드의 정의는 이러했다:

일종의 마음의 벽 같은 것인데, 개인마다 가지고 있는 고유의 영역이다. 개개인의 독립된 자아가 물리적인 형태로 표출된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AT필드 덕분에 에반게리온 내 세계관에서 등장인물들은 주체적이고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지만,  어떻게 보면 자신을 고립시키는 울타리와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어 외로움과 고독의 원천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어떤 것을 다른 것과 구분지으려면 '경계'가 반드시 필요한데, 이 경계는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을 고립시키는 역할도 한다. 개인을 구분짓는 자아도 같은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나는 한때, 이러한 AT필드를 내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다고 착각한 적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만큼 그 사람과 나의 경계 즉, AT필드를 허물기 위해 애썼다. 예를 들어, 내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면, 내 AT필드를 깎아내고 걷어내서 어떻게든 그 AT필드 속에 있는 나를 보여주려고 했다. 그래야지만 거짓 없는 진정한 관계를 만들 수 있고, 그 사람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AT필드를 깎아내는 데는 그만한 고통이 따랐다. 깎아내는 데도 물론 힘이 들긴 했지만, 내가 깎아내고 걷어낸다고 해서 상대도 그렇게 할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었다. 즉, 내 AT필드가 허물어져도, 상대의 AT필드는 여전히 남아있다면, 그 사람과 나는 여전히 하나가 아닌 둘이었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AT필드는 절대 허물 수 없다는 것이다. 언젠가 내가 지금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질문을 들어본 적이 있다. 나는 쉽사리 답하지 못했다. 나는 내가 _____라고 생각한다, 라는 질문에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내 AT필드 안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나조차도 모른다. AT필드가 얼마나 두꺼운지도 모른다. 그저 AT필드가 있다는 것만이 유일한 정보다. 그렇기에 AT필드를 허물 수가 없다. 상대방을 안다고 착각하지만 내가 보는 것은 단지 그의 AT필드와 그 밖에 있는 것들 뿐이다.


외로울 때마다 상대와 내가 하나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그럴 때마다 AT필드를 떠올린다. 1과 2 사이에 내가 슬프지도 외롭지도 않을 수 있는 곳을 찾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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