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현원 Sep 08. 2023

강물을 바라보며

   그날 나는 새벽에 꿈을 꾸었다. 나는 어느 해변에 맞닿은 동굴에 있었다. 동굴 안에는 물이 흐르고 있었다. 물은 무릎까지 차 올랐고, 동굴이라 어두컴컴해 앞을 분간할 수 없었다. 동굴 입구 쪽에서 한 줄기 빛이 비취었다. 빛은 아침햇살처럼 신선했다. 나는 빛을 따라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길 옆에 스탑(STOP)이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나는 그 표지판이 왜 거기에 있는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생각했다. 그러는 사이에 나는 잠을 깼다. 그날은 내가 제2인생을 시작하는 날이었다. 


  그날 아침에 나는 가족과 함께 강화도에 갔다. 출근시간이 지나서인지 자유로는 한산했다. 나는 90km 제한속도에 맞춰 달렸다. 창문을 열었다. 12월 초순이라 바람은 세지 않았다. 자동차는 자유로를 벗어나 일산대교로 접어들었다. 한 무리의 갈매기들이 강 위를 날아갔다. 강물은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강물을 바라보며 인생을 생각했다. 흐른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시간적, 공간적인 이동을 말한다. 지금 흐르는 저 강물은 한 달, 어쩌면 몇 달 전에 태벽산 깊은 계곡에서 작은 물방울로 시작되었을 것이다. 나는 오래전에 고향의 큰 산이 보이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지금 흘러가는 저 강물이 이곳을 지나기 위해 양수리, 구리, 반포, 여의도 등 여러 곳을 지나왔을 것이다. 나는 태어나 현재에 이르기까지 함안, 마산, 부산, 서울, 로스앤젤레스, 예루살렘, 고양 등 여러 곳에서 살았다. 지금 흘러가는 저 강물은 머지않아 김포와 강화에 닿고 서해로 나아갈 것이다. 나는 머지않아 새로운 도시에 닿고 대양으로 나아갈 것이다. 또한 그것은 수용과 포용을 말한다. 강물은 물뿐만이 아니라, 물과 함께 내려오는 나무, 종이, 쓰레기 등 모든 사물과 물체를 품고 받아들였다. 강물은 물과 물 아닌 것을 구분하지 않는다. 강물은 내 것과 내 것이 아닌 것을 구분하거나 분리하지 않는다. 강물은 어떤 경계도 짓지 않았고 이전의 물과 이후의 물을 분리하거나 단절시키지도 않는다. 만약 강물이 이전과 이후의 물로 구분하거나 분리할 경우 우리는 더 이상 강물이 흐른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더 나아가, 그것은 시간의 연결을 의미한다. 지금 흐르는 강물은 어제 흘렸던 강물과, 또 오늘의 강물은 내일의 강물과 서로 연결돼 있다. 오늘 살아가는 나는 과거의 산 나와, 미래에 살 나와 연결돼 있다. 이러한 점에서 어제의 강물은 오늘의 강물과 같고, 오늘의 강물은 내일의 강물과 같다. 마찬가지로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나와 같고, 오늘의 나는 미래의 나와 같다. 


  나는 대교를 지나며 다시 한번 강물을 바라보았다. 강물은 세월, 흘러가는 것을 두려워할까? 그렇지 않을 것 같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