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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트로베리 Sep 27. 2023

나는 돈 벌어서 다 어디다 쓴 거야?

부끄럽지만 결혼할 때 나는 내가 모은 돈이 3천만 원이 안 됐다. 

부모님이 자취하라고 보태준 보증금을 합쳐서 겨우 7천만 원이 되어 그 돈을 결혼자금으로 보탰다. 

남편도 나와 같은 박봉의 공무원이지만 부모님의 지원을 포함해서 2억의 돈을 가져왔다. 

우리가 결혼하던 2010년대는 여자는 혼수, 남자는 집이라는 보수적인 문화가 있었다. 


나는 모은 돈이 3천만 원이 안되었는데, 남편은 어떻게 1억이 넘는 돈을 모았을까


우선 책임감의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 

그 당시에는 여자들이 결혼하며 3천만 원을 모았다고 하면 

"아~ 평균이네, 우리 언니도 그랬어." 이런 분위기였다. 


주변 친구들은 좋은 가방, 매년 가는 해외여행, 맛있는 음식, 예쁜 옷들로 소비를 많이 했다. 

직장 친구는 우리 월급 빤한데 어떻게 그렇게 예쁜 옷, 가방을 많이 사냐고 물었더니

카드값 미납이 계속 쌓이고 있다고 대답했다. 

또 다른 고등학교 친구는 유럽 여행을 매 해가고 맛집 탐방을 다니며 돈을 썼다. 

격 없이 친했던 우리는 서로 간간히 

"너 얼마 모았어?"

"나? 모으긴 뭘 모아 적자 안 난 게 다행이야."

라고 대답하며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며 함께 안도했다. 

결국 이들은 전문직 남편을 만나거나 돈이 많은 남편을 만나 자기 살 길을 찾아갔다. 


반면, 우리 남편은 수도권에서 가족이 살 집을 구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더 열심히 박박 돈을 모았다.

정말 한 달에 꼭 필요한 공과금 지출 외에는 5만 원 정도 쓰면서 살았다고 한다. 

이런 경제적 마인드의 남편을 만난 것이 역시 나도 내 살 길을 잘 찾은 것 같다. 

우리 남편 정말 멋지고 대단하다고 더 많이 말해줘야겠다. 




그렇다면 나는 돈을 펑펑 쓴 것일까?

나 역시 아끼는 것이 몸에 베여있는 사람이다. 

고등학교 교사였던 외벌이 아버지 밑에서 추워도 보일러를 아껴 틀고, 웬만하면 찬물로 씻기까지 하는 극강의 절약 생활이 몸에 베여있었다. 

나는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며 10년 전 월급 200을 받았다. 


<200만 원 지출 내역>

-20만 원: 교통비

-30만 원: 공과금 및 집세

-20만 원: 용돈

-30만 원: 식비 및 생필품

-100만 원: 저축


나는 200 월급 중 100만 원을 저축하며 물가 비싼 수도권에서 살았다. 

친구들이 여행 가자고 아무리 꼬여내도 안 갔고 못 갔다. 

한 달 2만 원 내서 계를 만들자고 해도 그 2만 원이 부담스러워서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연애를 하고 데이트를 하는 것은 도저히 어려웠다. 


경력이 쌓여갈수록 나의 월급도 아주 조금씩 조금씩(10만 원?) 올라갔고 

그 올라간 만큼의 돈으로 친구를 만나거나 연애라는 걸 해보거나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월 100만 원씩 1년이면 1200만 원이고 적어도 10년을 일했으면 1억 2천이 있어야 하는데

다 어디 간 것이냐?

두둥

나는 대학원을 갔습니다. 

두둥

그것도 사립 일반 대학원을 가서 등록금만 한 학기당 500만 원이고, 심지어 중간에 휴직하고 모아놓은 돈 까먹으면서 전일제 대학원생으로 연구활동까지 했다. 정말이지 돈 먹는 하마가 따로 없다. 

나의 몸값을 올리겠다는 생각과 좋은 곳으로 이직을 하겠다는 마음 하나로 대학원에 가서 석사과정을 하고 박사과정을 했다. 그런데 연구활동에 매우 열심히인 것은 좋았는데 진로를 정확히 정하지 않았었다. 그때의 나는  열심히만 하다 보면 저절로 진로가 정해지는 줄 알았다. 지금 보니 방향 없이 열심히만 뛰던 나는 그저 마구 날뛰는 망둥이일 뿐이었다.

물론 연구실적들은 꽤나 많이 쌓았지만 결과적으로 대부분 연구직들은 4년 내 실적, 3년 내 실적이 중요한데 출산하고 육아하다 보니 나의 빛나는 실적들은 4년을 넘겨버렸다. 


그래도 나는 이 시간들이 무가치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학원에서 읽고 쓰고를 무한 반복하다 보니 세상을 읽는 눈이 떠졌다. 

부동산 투자는 인문과 경제, 심리, 문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종합예술이다. 

대학원 공부를 통해 나의 지적 능력이 향상되어 부동산 투자에 있어 더욱 깊이 사고할 수 있음이 감사하다. 


박사학위를 가졌으니 언제라도 시간강사를 나갈 수 있는 상황인 것도 참 감사하다. 

데이터 돌릴 때는 너무나 고되었지만 새로운 데이터 분석법을 습득하려 늘 노력한 결과 데이터 분석도 꽤나 잘하고 알바도 할 수 있을 실력을 쌓았다(물론 겸직 불가라 안된다). 

나의 개복치스러운 성향상 항상 보험이 있어야 해서

나의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잃게 되었을 때 할 수 있는 일들을 만들어 두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그럼에도 시간을 되돌린다면 당연히 부동산 공부를 일찍 시작했을 것이다. 

그리고 대학원에 썼을 8천만 원 정도의 돈으로 갭투를 하거나 재개발에 묻어뒀을 것이다. 


왜 그때는 몰랐고 지금은 깨달았나?


돈을 사랑해도 되는지 몰랐다. 교육자 집안에서 청렴하고 근검절약과 저축만을 보고 배웠다. 

돈에 대해 말하거나 돈을 사랑하는 것은 조금은 천박한 일이라고 편견을 가졌다. 

그래서 고고한 학문의 길을 가려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때는

'나 같은 게 부자가 어떻게 돼? 난 그냥 평범하게 살다 죽어야지'

'난 그냥 월급 받아서 잘 저축하고 먹고 싶은 빵이나 사 먹으면 그만이야.'

이런 생각이었다.


가장 큰 원인이자 문제는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은 '부자'가 될 수 없다고 믿었던 것이다. 

부자는 누구나 될 수 있다.

그것을 진심으로 깨닫는 순간이 바로 시작점이 되는 것 같다. 


평범한 사람들도 자본주의의 원리를 이해하고

자산시장을 이해하며

성실히 공부하여 투자를 해 나가면 

작은 부자는 얼마든지 될 수 있다. 


단, 배우려는 태도와 성실함이 반드시 필요하다 생각한다. 

이와 더불어 조금은 베짱이 필요하다는 것이 요새 생각이다. 


나도 부자가 될 수 있을지도 몰라 라는 생각을 한 이후로 나는 돈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부자가 되기 위한 궁리를 시작했다. 제도권에서의 공부만이 길이라 생각했던 나는 정말 의외로 돈을 버는 길은 다양하고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게 그 무엇보다도 재미난 공부인 돈 공부가 시작되었다. 

나는 앞으로도 치열하게 고민하고 두려움을 이겨내고 투자를 해나갈 것이다. 


싹이 보인다. 부자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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