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기 힘들겠지만 90년 초반만 해도 기내에서 흡연이 가능했다. 지금은 모든 항공사가 기내 금연을 실시하고 있다. 기내 흡연은 자칫하면 화재로 이어질 수 있을 만큼 위험한 행동이다. 만약 비행기에서 화재가 난다면 소방관을 부를 수도 없고, 몇 개 되지 않는 소화기로 화재 진압을 해야 하며, 밖으로 대피할 수도 없다. 비행기라는 특수한 공간에서의 화재나 연기는 큰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기내 흡연은 항공보안법에 의해 엄격히 금지된다.
시민의식이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그깟 '법' 따위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여전히 비행기에서 흡연하는 승객들이 있다. 비행하면서 1년에 적어도 1번 정도는 흡연 승객을 만난다.
착륙 30분 전.
이륙한 뒤로 4시간 만에 점프싯에 앉아본다. 점프싯 옆에 있는 작은 창문을 바라보기 위해 고개를 돌린다. 비행기에서 창문 밖 구름을 바라보면서 잠시나마 휴식을 취해본다. 객실 안 상황과는 다르게 불을 피워 연기가 나는 듯한 구름들이 평화롭게 떠다닌다.
'다낭에 생각보다 일찍 도착하네? 점심은 어디 가서 먹을까?'
퇴근을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없던 힘이 절로 난다.
다낭을 수십 번 다니면서 꿰뚫고 있는 맛집 리스트들을 머릿속에서 끄집어내 본다.
승객들도 비행기에 내리기 전 다들 분주하다. 객실 복도로 나와 찌뿌듯한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피기도 하고, 비행 내내 꺼내놓았던 짐들을 다시 캐리어에 넣기도 하고, 화장실로 들어가 반팔 차림으로 갈아입고 나오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도착하기 전 객실 복도는 늘 어수선하다.
그때 한 승무원이 승객들 사이를 비집고 내가 앉아있는 쪽으로 걸어온다. 비행 내내 승객들을 향해 밝은 표정이었던 그녀는 다소 상기되어 보였다. 눈썹을 잔뜩 일그러뜨린 채 말이다.
승객들 틈 사이로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입을 벙긋거리며 나를 부른다.
'사무장님.....!!'
그 모습이 애처롭기까지 하다.
'아, 이번 비행도 조용히 끝나질 않겠구나.. 무슨 일 났네 났어..'
"뒤에 무슨 일 있어요?"
심장이 두근거렸지만 침착한 목소리로 후배에게 물어보았다.
"사무장님..!! 화장실에서 손님들이 흡연했어요... 연기 감지 사이렌까지 울렸습니다."
"뭐??!!!! 담배 피웠다고요??? 지금 도착 직전이잖아. 근데 자... 잠깐.. 손님들??"
후배의 '손님들'이라는 표현이 귀에 거슬렸다.
"손님들이라니? 무슨 말이에요?"
"아 그게.. 손님 2명이 화장실에 같이 들어가서 흡연을 했어요."
"화장실에 2명이 같이 들어갔다고?! 그게 가능해??"
"네..."
'젠장..'
나도 모르게 육성으로 큰 한숨을 내쉬었다.
10년 가까이 비행하면서 흡연 승객들이 종종 있었지만 살다 살다 그 좁은 화장실에서 승객 2명이 같이 담배 피우는 건 처음이었다. 이런 상황을 일타이피라고 표현하는 건가 싶다.
띵띵띵-
"Cabin crew prepare for landing."(기장이 승무원에게 도착을 알리는 방송)
기장님의 도착 방송이 나온다. 비행 내내 퇴근을 알리는 기장님 방송을 기다렸는데 오늘만큼은 반갑지가 않다. 흡연 승객 상황을 정리하기엔 도착 전까지 시간이 너무 부족하기 때문이다. 조급함과 예민함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ㅇㅇ씨, 기장님에게 승객이 화장실에서 흡연했다고 연락드리세요. 그리고 흡연 금지 방송 바로 해주시고요. 저는 뒷갤리가서 손님들 인터뷰하고 올게요."
착륙 전까지 모든 상황을 마무리 지어야 되기에 지시를 내리는 나의 목소리는 날카로워졌다.
지시를 들은 후배는 곧바로 기내 방송을 하기 시작한다.
"손님 여러분, 기내에서의 흡연은 항공보안법에 따라 엄격히 금지되고 있습니다."
방송이 나가자 몇몇 손님들이 쑥덕거린다.
"누가 담배 피웠나 본데?"
나는 입술을 앙 다문 채 사건 현장인(?) 뒷갤리로 걸어가 닫혀있던 갤리 커튼을 확- 치고 들어갔다. 20대로 보이는 젊은 남자 두 명이 경직된 자세로 서있다. 그들은 흡연 사실을 들킬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지 당황한 듯 보였다. 게다가 엄청난 소리를 내며 울리는 사이렌 소리가 그들을 놀라게 하는 거에 한몫했다.
"두 분이 화장실에서 담배 피우셨어요?"
나는 격양된 목소리로 손님들에게 질문을 했다.
"아.. 아니요.."
한 명이 발뺌을 한다. 그의 표정과 말투는 마치 3살 아이가 엄마에게 뻔한 거짓말을 할 때의 모습 같았다.
"손님, 화장실 바닥에서 꽁초도 나왔고요, 화재 연기 감지 센서도 울렸어요. 두 분 다 같이 들으셨죠? 확실하게 대답해 주셔야 합니다."
더 이상 피할 곳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그들은 하는 수없이 자수했다.
"손님! 비행기에서 담배 피우면 안 되는 거 아시면서 왜 그러셨어요?!!
두 분은 기내 흡연으로 항공 보안법을 위반하셨습니다. 다낭 공항에 도착하면 현지 경찰에 인계될 예정이에요. 손님 인적 사항 파악을 해야 되는데 이름, 나이 말씀해 주세요."
그들은 '망했다..'라는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물었다.
"그럼 저희는 어떻게 돼요?..."
"그건 현지 경찰들에게 달려있어요. 벌금으로 끝날 수도 있고 추방당할 수도 있고요."
나의 얘기를 듣고는 겁을 먹은 듯했다.
'으이구.. 그러게 화장실에서 담배를 왜 피우냐고!!'
그들은 여자 친구와 함께 커플 여행으로 다낭에 가는 길이었다. 착륙 직전 기내가 어수선한 틈을 타 두 명이 함께 화장실에 들어가 흡연을 하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승무원에게 현장 검거된 것이다. 다낭 공항에 도착해 보니 기장님의 사전 연락으로 공항에는 현지 경찰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흡연 승객들은 울상을 지으며 비행기에서 내린다. 평소 같았으면 밝은 미소와 인사로 승객을 떠나보내지만 이들에게만큼은 예외 적용한다.
뻔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었음에도 그들은 스스로 여행을 망친 셈이다.
기내에서 흡연을 하고 나면 승무원의 '담배 피우지 마세요.' 안내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흡연 승객의 '한 번만 봐주세요.'는 더더욱 통하지 않는다. 승무원이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기적인 행동으로 함께 비행기에 탄 승객들이 상상할 수 없는 피해를 입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 기내 흡연에 대한 처벌을 더욱 무겁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조금이나마 경각심을 높일 수 있지 않을까?
부디 비행기에서는 금연하는 것을 신신당부드린다.
담배를 피워 여행길을 망치기 마시길..!
PS. 저와 인터뷰한 뒤 자리로 돌아간 두 승객은 여자 친구들에게 자초지종 설명을 하더라구요. 흡연 승객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 여자친구의 반응은?
등짝 스매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