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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여행자 Jul 13. 2024

비행기에서 맞이한 가장 슬픈 생일 ep2

  (1부에 이어서)

  평소 국제 전화를 하지 않는 엄마인데 이 날따라 국제 전화로 걸려온다.

  '비행 간지 모르나?' 또는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하려고?' 생각과 동시에 전화를 받았다.

  "엄마, 나 방콕 비행 왔....!"

  "ㅇㅇ아... 할아버지 돌아가셨다.."

  엄마는 꺽꺽거리며 할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간신히 전했다.

  "..................

  엄마, 나 방콕 비행 와서 회사에 얘기하고 한국 가면 장례식장으로 바로 갈게..."

  내 이야기를 다 듣지도 않고 엄마는 전화를 끊었다.



  태국어로 시끌벅적했던 카페가 순간 음소거가 된 것 마냥 고요해진다. 사람들이 입을 벙긋거리는데 내 귀에는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덤덤하게 엄마와 통화를 했던 조금 전과 달리 심장 박동이 뛰는 게 온몸에서 느껴진다.

  비행 때문에 바쁘다는 온갖 핑계를 대며 할아버지 못 뵌 지 1년이 넘었다. 요양병원에 계셨지만 할아버지의 건강 상태가 그렇게 나쁘지 않았기에 갑작스러운 부고 소식은 충격적이었다. 죄책감과 후회가 들며 쓰나미처럼 눈물이 차오른다. 눈물을 삼키려 애썼지만 곧이어 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했다. 주변에 앉아있는 태국인들이 힐끔힐끔 쳐다보지만 그들의 시선 따위를 신경 쓸 경황이 없었다.

  반도 마시지 않은 아이스 라테는 그대로 쓰레기통으로 직행했다. 급하게 자리를 정리하고 일단 호텔로 향한다. 호텔로 걸어가는 내내 길을 잃은 아이처럼 엉엉 운다. 쏟아지는 눈물, 콧물에 40도가 넘는 방콕 날씨로 이마에는 땀이 흥건했고 덕분에 얼굴에 머리카락이 착 달라붙는다.


  호텔 로비에 도착하자마자 회사에 전화를 했다. 감정을 가라앉히고 할아버지 부고 소식을 알리려고 했던 내 마음과는 다르게 목소리가 부들부들 떨린다.

  같이 비행한 사무장님과 팀원들에게도 할아버지 부고 소식을 전달했다. 그들은 나에게 위로의 말을 전했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다 같이 웃고 노래 부르고 고깔모자까지 쓰며 생일 파티를 했는데 상을 당한 이 상황이 모두 당혹스러울 뿐이다.


  방콕에서의 짧은 레이오버 Lay-over(현지에서 머무는 것)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을 앞둔 시점, 승무원들이 호텔 로비에서 브리핑을 하기 위해 모였다. 팀원들 모두 내 눈치를 보는 듯했다.

  "ㅇㅇ씨, 비행할 수 있겠어?"

  "사무장님, 저 신경 안 쓰셔도 괜찮아요.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팀원들에게 피해를 끼치고 싶지 않아 애써 밝은 척을 해본다.

  결국 사무장님은 나를 배려해 인바운드 In Bound(방콕에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일정) 비행 듀티 duty(비행 업무)를 바꿔주신다.



  한밤중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은 그 어느 때보다 고요하다. 대부분의 승객들은 잠에 들었고 승무원을 찾는 호출 버튼도 눌리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에는 감당되지 않는 슬픔이 몰려올 것 같아 괜히 객실을 돌아다녀 본다. 승무원을 찾는 승객 한 명 없었지만 혼자 바쁘게 일을 찾아 나선다. 그때 이 모습을 본 사무장님이 한마디를 한다.

  "일하지 말고 그냥 점프싯 Jump seat(승무원 전용 좌석)에 앉아서 쉬어요."

  사무장님의 말에 못 이겨 갤리 옆에 붙어있는 점프싯에 털썩 앉는다. 밤 비행으로 객실 조명은 꺼져있어 사방이 어두침침하다. 갤리에 있는 작은 보조등만이 흐릿하게 켜져 있다. 점프싯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본다. 끝을 알 수 없는 밤하늘에는 수십만 개의 별들이 가득하다.

  비행기에서의 근사한 생일 파티, 방콕 도시 한복판에서의 여유로움으로 세상 부러울 것 없는 것처럼 행복해했다. 뒤이어 생일날 갑작스러운 할아버지의 비보로 나의 감정은 극과 극을 오갔다. 이런 비행이 있을 수가 있나 싶다.



  행복이 빼꼼 얼굴을 내미는 순간, 어디선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슬픔이 나타난다. 우리는 그 슬픔이 마치 영원할 것처럼 슬퍼하고, 반대로 행복이 영원할 것처럼 행동한다.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나와 먼지가 가라앉고 나면 이내 깨닫게 된다. 영원한 것은 절대 없다는 것을 말이다. 이 사실을 인정하고 나니 덜 무섭고, 덜 두렵다. 다만, 살아가는 동안 슬픔보다는 행복한 날이 한 뼘만큼은 많을 수 있도록 노력한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5시간 동안 점프싯에 앉아 강제로 생각 정리를 하게 되었다. 덕분에 난기류가 오갔던 나의 마음이 한층 가라앉는다.

 어둠이 영원할 것만 같았던 밤 하늘 틈 사이로 푸른색과 붉은색이 오묘하게 뒤섞여 희미한 빛줄기가 보인다. 밤이 가고 아침이 오는 것처럼 우리의 행복도 슬픔도 그러하겠지.



PS. 최근에 인사이드 아웃이라는 영화를 봤는데요, 영화를 보고 나니까 좋은 감정이든 싫은 감정이든 '감정' 그 자체를 부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쉽지 않지만 내가 느끼는 감정들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보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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