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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여행자 Oct 17. 2023

승무원 유니폼 뒤태의 중요성

비행 중 바지가 터졌다고?

  승무원에게 유니폼은 떼어놓을 수 없는 존재이다.

10년 가까이 유니폼을 입고 출퇴근을 하다 보니 이제는 나의 데일리룩으로 자리 잡았다.

유니폼을 입고 다니면서 내가 느낀 장점과 단점이 있다. 출근마다 뭐 입을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옷값이 덜 든다, 멋있어 보인다 정도의 장점이 있다. 반면 남들의 눈에 잘 띈다, 회사를 대표하는 사람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행동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 복장이 생각보다 편하지 않다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단점이다.

  승무원 지망생이던 시절에는 유니폼을 입고 한 손에는 캐리어를 끌며 공항으로 출근하는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렸다. 그리고 그런 유니폼을 입은 승무원의 모습을 선망했다. 하지만 지금은 유니폼 입은 모습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 출퇴근 시에는 유니폼 위에 셔츠나 외투를 걸쳐 어떻게든 감추려고 한다.


  근사해 보이는 유니폼이지만 덕분에 웃지 못할 사건이 있었다.

  비행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회사에서 성격 좋기로 유명한 사무장님과 함께 비행이 나왔다. 그래서인지 비행 가기 전 평소와는 다르게 심적 부담이 덜했다. 참고로 승무원들에게는 어떤 노선을 가는지보다 누구와 함께 비행을 가는지가 더욱 중요하다. 특히 신입 시절에는 어떤 사무장님과 비행을 하느냐에 따라 비행 난이도가 극과 극으로 나뉘게 된다.

너무 안심했던 탓이었을까? 친절하기로 소문이 자자한 사무장님이었지만 햇병아리 신입 승무원이었던 나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혼날 건덕지가 없는 탑승 인사를 할 때부터 사무장님에게 혼나기 시작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처럼 나의 삐걱댐은 여기서부터 시작이었다. 비행 중에는 내가 승객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였으나 불만을 내가 아닌 사무장님에게 표출하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모든 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잘해보려는 마음만 앞서서인지 오히려 실수투성이었다. 덕분에 비행 내내 사무장님에게 예의 주시를 당했다. 눈칫밥 속에서 긴장을 하며 비행하게 되는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전쟁터 같았던 식사 서비스가 끝나고 아일(Aisle 비행기 복도)을 순회하며 승객들을 살폈다. 그때 앞쪽에 앉은 30대 남자 승객이 지나가는 나를 불렀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는 듯싶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다.


  "저기 말씀드릴 게 있는데요. 아.. 아니에요.. 저 앞쪽에 있는 승무원한테 얘기할게요. 승무원 좀 불러주세요."


  순간 당황했다. '내가 뭐 잘못했나?'부터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아 컴플레인을 하려고 하는 건가?', '바쁘다는 핑계로 승객 응대를 너무 급하게 했나?'와 같이 짧은 순간이었지만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안 그래도 사무장님의 뜨거운 관심 속에서 비행을 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아, 난 망했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갤리(Gally 승무원 작업 공간)로 돌아가 사무장님께 이 상황에 대해 말씀을 드렸다. 내 이야기를 듣고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은 채 남자 손님과 응대를 하기 위해 승객 자리로 갔다. 상황을 살피고자 갤리 커튼사이로 고개를 빼꼼 내밀고 지켜보았다. 생각보다 둘의 대화는 다소 싱겁게 끝이 난 듯했고 사무장님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갤리로 돌아온다. '혼날 일만 남았구나'라고 생각하던 중 사무장님이 갤리 커튼을 획 열며 나에게 말을 한다.


  "OO 씨, 뒤 돌아봐."


  뭔가 싶었다.


  '컴플레인이 아닌가?'


  알고 보니 내 유니폼 바지 엉덩이 부분에 500원짜리 동전만 한 크기로 구멍이 나있었고, 내가 객실 복도를 돌아다닐 때 남자 승객이 발견을 한 것이다. 나에게 말을 해주려 했지만 당사자에게 직접 말하면 민망해할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했는지 사무장님을 불러 대신 얘기를 전한 것이다. 컴플레인이 아니라는 사실에 잠시 안도감을 느꼈지만 유니폼 바지에 구멍이 난지도 모르고 아일을 활보하고 다녔다는 사실에 얼굴이 활활 타올랐다. 급하게 화장실로 들어가 내 뒷모습을 확인했을 때는 비행기에서 당장 뛰쳐나가고 싶었다. 출근할 때만 해도 멀쩡했던 바지가 언제 어디서 왜 구멍이 난 건지 당최 알 길이 없다.


  구멍 난 바지 덕분에 사무장님은 나를 착륙 전가지 갤리에서 나오지 못하게 하셨고, 내가 맡은 Zone을 사무장님이 대신해서 승객들을 케어했다.

비행 업무부터 유니폼 바지까지 내 뜻대로 되는 게 없었던 총체적 난국이었던 날. 이날 이후로 생긴 유니폼에 대한 나의 생각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

  유니폼 앞태보다 뒤태를 더 신경 쓰자.



PS. 이 날 퇴근하고 잠들기 전 침대에서 이불킥을 몇 번이나 했나 몰라요.. 이제는 세월이 많이 흘러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남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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