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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연 Oct 22. 2024

아름답다는 것의 의미

:  H에게

H에게    


 

 너를 처음 본 건 대강당에서의 학사 안내를 받은 후 강의실로 자리를 옮겼을 때였어. 고등학생을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앳된 얼굴을 한 아이들을 보면서, 괜시리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더라. 내가 이 사이에 잘 어우러져 지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보단 설렘이 조금 더 컸어. 어디를 봐도 온통 에너지가 넘치는 풍경에 ‘아, 내가 정말로 대학교에 왔구나’라는 실감이 났거든. 다들 낯을 가리느라 말을 하고 있지 않아도 젊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생기는 어쩔 수가 없거든.  


   

 너는 정장을 차려입고 단상 앞에 섰어. 학생회 임원들을 한 명씩 소개하고, 앞으로 1년간 있을 대학 행사를 안내했지. 그런데,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던 거야. 그땐 감기라던가 아니면 컨디션이 좋지 않은가 생각했지. 나중에 알고 보니 처음 학생들이 건물로 입장할 때 선배들이 일렬로 서서 환호성을 질러줬었는데, 그때 무리한 나머지 목소리가 쉬어버렸던 거야. 그렇게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애써 끌어내며 말을 하기 시작했지.


 제법 말 전달을 잘하고, 키도 크고, 덩치도 있어서 우리 과를 대표하고 있는 인물로 아주 제격인 그런 모습이었어. 그냥 외형적으로 그런 이미지를 주는 사람 있잖아. 굉장히 믿음직하고, 든든한 그런 이미지. 네가 딱 그런 모습이었거든. 그런데 애써 말을 이어나가려는 네 노력이 무색하게도 목소리는 잘 나오지 않았고 결국 마이크를 넘기며 속상해하는 얼굴에 자꾸만 시선이 갔어. 그것이 내 기억에 남은 너의 첫인상.     



 시간이 가며 조금씩 더 알아간 너라는 사람은 그보단 조금 더 여리고, 더 빠르게 성장해나가고 있는 인물이었어. 막 날개를 펼치기 시작하는 청년, 딱 그 자체여서 시행착오를 겪어가는 너의 모습에서 난 오히려 빛을 느꼈어. 넌 자꾸만 네가 부족하다며 스스로 자책하지만, 내가 느끼기엔 지금 너는 너 자체로 참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      


 아름다움이란 게 뭘까. 나는 무엇을 보며 아름다움을 느끼며 살까. 어릴 적 어른들이 아이들을 보면서 예쁘다 했던 그 마음을 이제는 내가 느끼고 있음을 실감해. 그 나이에도 나름의 고민과 무게가 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순간순간 그런 것들을 떠나서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볼 때면 가슴이 두근거릴 만큼 아름다워 보인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어. 이런 얘기를 하면 내가 너무 나이 든 것 같아 싫지만 말야.     



 존재만으로도 귀하다는 말이 있다. 너 역시 그래. 어떤 것들은 그 존재만으로도 의미가 되는 것들이 있어. 사람이 그래. 어떻게 생겼고, 어떤 성격을 가졌고, 무엇을 잘하고가 가치를 증명하는 게 아니라는 거지. 뻔하고 흔한 말이지만 그래서 다들 온전히 느끼지 못하기도 해. 그 모든 것들은 각자가 가진 색깔일 뿐, 가치의 척도가 될 수 없어. 우리가 노란색보다 파란색이 귀하다고 말하지 않는 것처럼 말야,     



 너를 보면 난 여전히 아름다움을 느껴. 네가 무심결에 말하는 것들을 들을 때마다, 무방비하게 웃는 그 순간들마다 나는 너에게서 빛을 본다. 내가 아름다운 것에 대한 글을 쓰면서 가장 먼저 너를 떠올렸다는 걸 네가 잊지 않았으면 해.


 너의 시간은 이제 시작이고, 너는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으니까. 너의 더욱 빛날 시간들을 내가 옆에서 많이 응원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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