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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데르와 Sep 10. 2023

2. 서울 어딘가에 파르테논이 있다

여전히 생생한 그곳



   십오 도 더 된 이야기다.


   당시 학생이던 내가 다니던 학원은 규모가 제법 커서 통원 버스 또한 열다섯 대 정도로 많았다. 그래서 버스들은 골목에 위치한 학원 앞이 아닌, 운전면허 연습장 옆이자 어느 고가도로 아래에 주르륵 서서 학생들을 내려주곤 했다. 평일에는 하교 후 버스를 타고 내렸기 때문에 그곳은 늘 어두컴컴했다. 크고 높은 기둥은 고가도로 그림자 때문에 위압감이 느껴졌으며 분위기도 꽤 을씨년스러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주말은 등교 대신 등원을 하는 날이었다. 시험기간이라 공부에 집중하기 위해 학원으로 향했던 것 같다. 주말에는 당연하게도 버스가 일찍부터 학생들을 실어 날랐다. 그날은 구름 사이로 해가 간간이 얼굴을 내미는 날이었다. 버스에서 내린 후 별생각 없이 고개를 들었을 때, 내 눈은 반짝 빛났다.


   고가도로를 받치고 있는 몇십 개의 굵은 기둥, 빛이 바랜 콘크리트 표면, 군데군데 이끼처럼 끼어 있는 빗물 자국, 고가도로 사이로 비쳐 흐르는 은은한 햇빛. 휘황찬란한 광경은 아니었지만 제법 웅장했다. 판타지 세계의 입구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SF 영화에서는 대개 낯선 판타지 세계에 처음 발을 디딘 주인공을 위해 슬로 모션으로 그 세계 전경을 뽐낸다. 그것은 생애 처음 경험해 본 슬로 모션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학원을 향해 바삐 직진하는데 나만 그 사이에서 쭈뼛쭈뼛 뒤를 돌아보며 그 광경을 조금이라도 더 눈에 담고 싶어 했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그저 그런 장소에서 다른 차원의 무언가를 발견했다는 사실은 십오 년 이상이 흐른 지금까지 굉장히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때 처음 느낀 것 같다. 평범한 것을 특별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나만의 파르테논에 붙인 이름은 '아란로운'이었다. 포털 사이트에 순우리말을 검색해 이것저것 조합한 단어였다. '아란'의 어원은 모르겠지만 '로운'은 슬기롭다 등의 단어에서 가져왔던 기억이 난다. 당시 나는 한글의 아름다움에 푹 빠져 있었다.


   나는 그 학원을 오 년이나 다녔다. 아란로운은 오 년 동안 그곳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내가 대학에 갈 때까지 함께해 준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나라는 사람의 작은 조각으로 존재한다. 아란로운은 내게 두 번째 고향쯤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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