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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데르와 Sep 15. 2023

2-★. 아란로운

천사의 비행(非行)








   앨리스는 날개를 몇 번 퍼덕이다가 이내 얌전히 접었다. 날개 소리가 멎자 주변은 금세 고요해졌다. 콘크리트 위에 자리를 잡고 앉은 앨리스 새하얀 비단에 먼지 알갱이가 붙어댔다. 옷 너머로 까끌한 콘크리트 표면이 느껴졌다. 앨리스는 입을 삐죽이면서 방금 들었던 꾸짖음을 상기했다.


   '선(善)에 의심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천사는 선으로써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배려하고 양보하면서 자체 좇다 보면 당장 내가 곤란해질 수도 있는. 앨리스는 뒤이어 공공연한 비밀도 기억해 냈다. 천국의 모두가 알고 있지만 함구하는, 그 천사가 그랬다더라, 하 몰래몰래 전해지는 이야기였다.

   '천사는 오로지 선을 행해야 한다'전제'왜?'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 천사 이전에도 있었다고 했다. 몇백 년에 한 번, 한 명 정도씩 등장하는 모양이었다. 몇 세기를 뛰어넘고도 많이 닮았던 그 몇몇, 너무나 당연해서 달리 설명할 길이 없는 천국의 상식을 계속해서 파고들었다.

   대다수의 천사는 이 이야기를 듣고 세상에 별종이 다 있다며 금세 잊어버렸다. 그러나 이것은 앨리스의 마음속 틈새로 날아가 뿌리를 내렸다. 앨리스도 자신이 그 별종이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리고 이전의 별종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앨리스 역시 명쾌한 답을 들을 수는 없었다.


   별종들을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들은 끝내 수긍했을까, 아니면 아직도 마음 깊은 곳에 그 물음을 묻고 수긍한 척 지내고 있을까. 앨리스는 그들을 찾아내서 반쪽짜리 답이라도 구하고 싶었다. 그러나 의문을 품기만 해도 야단을 맞는 상황에서 별종의 존재를 캐내기란 불가능했다.

   의문이 짙어질수록 앨리스가 천국을 떠나는 빈도와 시간 또한 늘어나고 길어졌다. 불편한 연기가 온몸을 감싸는 듯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천사의 눈을 피해 구름과 신전을 뒤로하고 날개를 펼칠 때면 꼭 죄를 짓는 것만 같았다. 커다란 상아색 신전의 호통이 심장을 옥죄는 것만 같아서, 앨리스는 늘 뒤 한 번 돌아보지 않고 날개를 바삐 움직여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다. 그렇게 신전을 얼기설기 닮은 차가운 콘크리트 아지트를 발견한 것이었다. 저번에는 기둥 어딘가에서 다른 천사의 흔적도 발견했다. 천사의 언어로 '아란로운'이라고 쓰여 있었다. 언제 남긴 걸까. 시간을 뛰어넘은 공감이 전해지는 듯했다. 앨리스는 답답할 때마다 그 발음을 혀끝으로 살살 굴리는 게 습관이 되었다.


   아란로운은 선을 잊는 공간이었다. 이곳에서는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내면을 향해 질문할 수 있었다. 선을 행하는 것이 천사의 숙명인가? 선을 좇으며 희생하는 것만이 천사의 도리인가? 천사는 그것만으로 행복할 수 있는가? 그 행복은 과연 진짜라고 말할 수 있는가?

   문득 앨리스의 눈에 인간들이 들어왔다. 그들은 어디론가 열심히 열심히 이동하고 있었다. 행렬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아래에는 그들이 입고 있는 옷의 종류만큼 다양한 군상이 있을 터였다. 인간은 선하기도, 악하기도, 형용할 수 없기도 하다.

   앨리스는 깨달았다. 나는 아직 천국에 맞는 퍼즐이 아니구나. 흉내만 내는 선은 진실될 수 없다. 선의 가치를 다시금 느껴야 했다. 천국이 선으로 가득 찬 이유를 알아내야 했다.

   그러니까 그 별종들은, 천국에 남은 것이 아니었다. 앨리스는 크고 길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아래를 향해 날갯짓했다. 앨리스는 비로소 인간들 틈에 섞여 들었다. 빛나던 날개는 다이아몬드 더스트처럼 흩어 자취를 감췄다. 그것은 앨리스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비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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